
조선시대 전립(戰笠)에 관한 연구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origins, wearing practices, and typological characteristics of the jeolrip (戰笠) during the Joseon dynasty. Originating from felt hats commonly worn by northern nomadic peoples, the jeolrip was widely adopted in Korea during the Goryeo period under strong Mongol (Yuan) influence. This custom persisted into the Joseon period, when successive wars in the 17th century contributed to its broader use as a men’s hat, particularly consolidating its role as military headgear. Although no extant records directly describe the early Joseon jeolrip, historical sources reference ornaments, such as jeongja (top ornaments) and hat strings, suggesting that its form closely resembles later examples. By the late Joseon period, the jeolrip had diversified according to materials and decorations. Commoners typically wore wool or mixed-fur hats known as beonggeoji, whereas military officials wore elaborately adorned an-ollim beonggeoji, constructed from silk-covered felt and decorated with jeongja, peacock feathers, sangmo (tassels), and paeyeong (ornamental pendants). During the 17th and 18th centuries, horsehair jeolrip gained popularity, while bamboo-woven jeolrip became fashionable among upper-class men in the 19th century. The hongjeolrip (red jeolrip), often worn by noeja (military officials), features a central dragon-shaped ornament, a design believed to have originated from the Ming dynasty. This study differs from previous research by systematically categorizing jeolrip types according to materials and decorative features and substantiating each classification with historical evidence. These findings contribute to a broader and more nuanced understanding of traditional Korean headgear within the context of Korean costume history.
Keywords:
Beong-geo-ji, felt hat, Jeolrip, military official’s hat, military official’s uniform키워드:
벙거지, 전모, 전립, 군모, 군복Ⅰ. 서론
전립(戰笠)은 모(毛) 섬유를 축융(縮絨)하여 만든 갓[笠子]의 일종으로, 조선시대 하층민부터 군인(軍人), 기녀(妓女), 무녀(巫女)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군인과 하층 남성의 대표적인 모자로 정착하면서, 기능성과 신분 상징성을 동시에 지닌 복식으로 자리하였다.
지금까지 복식사 분야에서 전립에 관한 학술적 논의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Kang(1993)과 Yu(1975)는 조선시대 관모 전반의 계보를 정리하며 전립의 역사적 고찰을 시작하였고, Kang(1995)은 전립의 수용과 발전 과정을 규명하여 전립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어 Jang(2007), Park(2017), Yun(2014) 등의 연구에서는 전립의 장식적 요소와 입식(笠飾)의 유형을 분석함으로써 전립의 구성 요소와 심미적 특징을 보다 상세히 밝혔다. 이처럼 전립의 장식 요소에 관해서는 최근의 선행연구를 통해 그 실체가 비교적 자세히 밝혀진 반면, 전립 자체의 성격과 의미에 관한 논의는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다. 따라서 기존 연구 성과를 토대로 전립에 관한 학술적 논의를 재개하고, 전립의 성격과 의미를 다각적으로 조명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의 목적은 지금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조선시대에 착용했던 전립의 유래와 착용 양상, 유형을 재검토하는 데 있다. 특히 기존 연구에서 다소 간과되었던 전립의 유형을 보다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그 특징을 정밀히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선행 연구와 사료를 기반으로 한 문헌 고찰을 중심으로, 동시대 회화 자료와 현존 유물에 대한 탐구를 병행하고자 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조선시대 전립이 가지는 의미와 위상을 심층적으로 고찰하고, 나아가 관모 연구의 전망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Ⅱ. 전립의 유래
전립은 전립(氈笠), 전립(戰笠), 전모(氈帽) 또는 모립(毛笠)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문헌을 살펴보면 ‘전’의 표기에 모직물을 뜻하는 ‘氈’과 전쟁을 의미하는 ‘戰’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임하필기(林下筆記)』(1871)에 의하면 두꺼운 모직물로 제작한 전립은 전쟁 시 적군의 화살이 쉽게 뚫지 못하여 주로 무관들이 착용하였다고 한다(Lee, 1871). 이 기록은 보온을 목적으로 착용되던 털모자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그 기능성이 점차 인식되면서, 주로 무관을 중심으로 착용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용어와 개념이 혼용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전립의 기원을 ‘모(毛)를 소재로 한 모자’, 즉 전모(氈帽)로 보자면, 그 역사는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C. 17–15세기 신장 위구르 자치구 로프노르(Lob Nuur) 지역의 소화(小河) 무덤에서 출토된 전모 <Fig. 1>은 오래된 고대 모자 유물 중 하나이다. 본래 신장 지역은 오랜 유목 생활을 배경으로 펠트(felt)가 발달해온 곳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Xin & Bian, 2014), 이와 같은 모자 역시 북방 유목민족의 생활 관습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발달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송(宋)나라 고승(高承, ?–?)이 편찬한 『사물기원(事物紀原)』에도 티베트계 유목민족인 강족(羌族)의 석모(席帽)라고 하는 양털모자가 진 ‧ 한대(秦漢代)에 유입되어 중국에 널리 퍼졌다고 기록되어 있다(Gao, n.d.). 이는 중국에서도 털을 다져 만든 모자가 주변 민족으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른 시기부터 교류를 통해 중국 문화에도 흡수되었음을 의미한다.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저술된 남송(南宋)의 수도인 임안(臨安)을 배경으로 한 서호노인(西湖老人, ?–?)의 『서호노인번승록(西湖老人繁勝錄)』에는 ‘遇雪,公子王孫賞雪,多乘馬披氈笠。’이라는 구절이 보인다(Seohonoin, n.d.). 이는 귀족 자제와 왕손(王孫)들이 눈 구경을 위해 전립을 착용하였다는 기록으로, 당시 상위 계층에서 전(氈)으로 만든 갓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송대 문헌에서 ‘전립’에 대한 표기가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적어도 이 무렵부터 챙이 있는 전모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당서(新唐書)』(n.d.)에는 병사들에게 지급한 물품의 목록에 갑옷, 무구(武具)와 함께 전모의 기록이 있어 전모가 당대(唐代)에 군사들 사이에서 착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Xin-Tangshu, n.d.). 남송의 학자 오증(吳曾, ?–?)의 『능개재만록(能改齋謾錄)』(1154–1157)에도 당시 ‘수도 안에 의복 차림이 외적의 제도를 뒤섞은 자들이 있는데, 전립자(氈笠子)를 쓰고 전포(戰袍)를 입으며 번속대(番束帶)를 매는 등의 행태를 보여 이를 엄격히 금지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Wu, n.d.). 이는 전립이 군사의 복식과 짝을 이루는 모자임과 이러한 차림이 여전히 주변 민족의 문화로 여겨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송에 이어 중원을 차지한 원(元)은 유목민족인 몽골족이 세운 나라로, 그 복식 풍속에는 유목문화가 강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이들은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비며 야외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모자를 착용했다. 명나라 홍무(洪武) 연간에 주부(主簿)를 지냈던 엽자기(葉子奇, 1327–1390)의 『초목자(草木子)』(1378)에 의하면 원에서는 ‘관인과 백성 모두 모자를 착용하며, 모자의 챙이 둥글기도 하고, 앞은 둥글고 뒤는 네모나기도 하며, 누각(樓閣) 모양으로 된 것도 있다’라면서 다양한 모자의 종류에 관해 설명하였다(Ye, 1378). 이는 오늘날에도 잘 알려진 발립(鉢笠)과 와릉모(瓦楞帽) 등을 의미한다. 발립은 <Fig. 2>와 같이 챙이 있는 둥근 모자로, 다양한 재료로 만들 수 있었기에 <Fig. 3>처럼 털이 달린 모전으로 된 것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대 발립은 모정의 정자 장식으로 품계를 구분하고 상모 장식도 함께 달기도 하였는데(Kang, 1995), 그 양식은 <Fig. 4>와 같이 확인된다.
고대부터 북방 유목민족과 많은 접촉이 있었던 우리 문화에도 털을 다져 만든 모자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챙이 달린 모자 형태의 전립이 착용된 것은 원과의 교류가 많았던 고려시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사역원(司譯院)의 외국어 학습 교재인 『노걸대(老乞大)』의 번역본을 살펴보면 ‘雲南氈海青帽兒’, ‘氈帽兒’의 기록이 있어 원의 풍속과 관련한 전립의 착용이 있었음을 시사한다(Jung, 2004). 고려말 우왕(禑王) 13년(1387) 기록에 의하면, 동 ‧ 서반 7품 이하의 관리들은 전모와 사대(絲帶)를 착용케 했으며, 반방(飯房)과 수방(水房), 등촉상소(燈燭上所)는 고정립(高頂笠) ‧ 직령(直領) ‧ 전모를 착용하게 하여(Goryeosa, 1387), 궁궐에서는 비교적 낮은 지위의 남성들이 전립을 착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Ⅲ. 조선시대 전립의 착용 양상
원이 멸망한 이후에도 원의 복식 풍속은 명과 조선에 각각 잔존하였는데, 이는 전립도 마찬가지였다. 명에서는 군장(軍裝)과 사졸(士卒)들이 홍립군모(紅笠軍帽)를 썼는데, 이때의 군모란 전립을 의미한다. 또한 사제(社祭)와 같은 의식을 진행할 때에도 집사(執事)나 하역 인부들 모두 홍전립을 착용했다(Zhou, 1984). <Fig. 5>는 명대 군대 행렬 장면을 그린 중국 산둥성박물관 소장의 『형개항일원조전적도(邢吤抗日援朝戰績圖)』를 모사한 것으로, 실제 그림에서는 하급 관리인들이 홍색의 전모를 착용한 것으로 묘사되었다고 한다(Zhou, 1984). 명대의 유서(類書) 『삼재도회(三才圖會)』(1609)에는 호인(胡人)의 풍속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된 전립과 몽골족의 계파인 달단(韃靼)에서 유래한 달모(韃帽)의 도설이 <Fig. 6>과 같이 수록되어(Wang, 1985), 명 말까지 전립의 풍속이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청대(淸代)에는 지배계층이 만주족으로 교체됨에 따라 관모의 형태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이에 따라 군모의 형식 또한 위모(緯帽)나 작은 입자(笠子)로 변형되었으며, 일부 노동 계층을 제외하면 전립의 착용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어진다(Yan, 2018).
이처럼 중국에서는 청대에 이르러 전립의 착용이 점차 축소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전립의 착용이 확산되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조선 초기에는 원의 유제가 남아 있어 태종조까지 전립을 전모라 하였고, 세종에서 세조 연간까지도 전모와 전립이라는 말을 혼용하였다. 중종 연간까지 전립에 관한 실록 기록에는 전립의 착용 계층이 특정되지 않았고, 주로 먼 길을 떠나는 지방관, 사신(使臣) 및 조선을 방문한 외국 사신들에 대한 하사품으로 등장한다(Sejongsillok, 1418, Dec 11; 1419, May 25). 그러나 한편으로, 명종 8년(1553)에 유학자(幼學子) 서엄(徐崦)이 ‘선비는 관건(冠巾) ‧ 단령(團領)을 입도록 하고 무인은 모립 ‧ 철릭(帖裏)을 쓰게 하자’고 상소한 기록(Myeongjongsillok, 1553. October 23)을 보면, 전립은 일찍이 군모에 적합한 것으로 여겨졌다고 본다. 비교적 후대의 기록이나, 함경도 지방의 풍토를 기록한 『북새기략(北塞記略)』(1777)에 의하면 함경도 마천령은 바람이 많이 불어 전립 쓰는 것을 좋아하는 풍속이 있으니 품관 자제들은 모두 착용하였으며(Hong, 1777), 『임하필기』에도 오랑캐의 습속을 가깝게 접하고 있는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대부분 모전립을 쓴다고 하였다(Lee, 1871). 이를 통해 이민족과 잦은 교류가 있었던 북방지역에서는 전립이 야외 활동에 있어 실용적인 모자로 착용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군모로서 전립의 입지가 강화된 것은 임진왜란(1592–1598)과 무오년(戊午年) 파병(1618), 정묘호란(1627) 등 연이은 전쟁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직후 조정에서는 사서인(士庶人)의 복식 제도를 전시(戰時)에 적합한 것으로 바꾸고자 여러 차례 논의하였다. 선조 26년(1593)에는 예조가 관복제도를 입계(入啓) 하였을 때, 조정에서는 금군(禁軍) 이하의 공 ‧ 사천(公 · 私賤)에는 소모(小帽)를 쓰게 하며, 초립(草笠)은 금하되 전립은 금하지 않도록 하였다(Seonjosillok, 1593, Jun 1). 2달 후 시행령을 앞두고 선조는 ‘전립은 간편한 제도여서 전사들이 입을 만한 것이기 때문에 금군은 전립을 착용하고 소매가 좁은 포[小袖袍]를 입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Seonjosillok, 1593, Aug 28). 또한 서인들이 소모를 쓰고 금군은 전립을 쓰는 것이 싸우기 편할 듯하다고도 하며 금군의 전립 착용을 독려하였다(Seonjosillok, 1593, Nov 5).
이후 무오년인 광해군 10년(1618), 명과 후금(後金)의 전쟁에 우리나라 군인들을 요동(遼東)으로 파병하였는데 이때 출병하였던 이들이 전립을 많이 착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모전립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다(G. Lee, n.d.; Y. Lee, 1871). 이에 선조 26년의 복제 개정은 일정부분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파병 10여 년 후인 정묘호란 때에는 사대부들도 간혹 전립을 착용했으며, 무인이라면 대관이라도 모두 전립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고, 평민들까지도 통용할 정도로 전립 착용이 확산된다(D. Lee, n.d.; G. Lee, n.d.).
전립이 군사 복식 제도 안에 본격적으로 편입된 시기는 인조 연간으로 보인다. 인조 7년(1629), 서경우(徐景雨, 1573–1645)에 의해 파수(把守), 포수(砲手), 살수(殺手)의 복색이 다른 군사의 예대로 전복(戰服)과 전립이어야 한다고 주장되었으니(Seungjeongwon-ilgi[SJW], 1629, Apr 19), 이는 많은 군사가 전립을 착용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인조 12년(1634) 평안 감사 장신(張紳, ?–1637)은 ‘군위는 매 도회에 320명을 뽑았으며, 예전에는 모두 홍의(紅衣)에 우립(羽笠)을 착용하였는데, 병인년(1626)에는 반은 전복에 전립을, 반은 홍의에 우립을 착용하였다’라고 장계를 올려(SJW, 1634, Mar 22), 이 시기 군의 복장은 군복(軍服)과 융복(戎服)으로 양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민군인 속오군도 벙거지를 착용하고 있었으므로(SJW, 1638, Mar 9) 이미 많은 군인이 전립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효종 3년(1652)에는 능행(陵幸) 시 내삼청(內三廳) 금군 모두 협수(俠袖)와 전복, 전립을 입고 호위하도록 하는 전교가 병조에 내려졌었다(SJW, 1652, Jul 15). 이를 통해 무렵 조선 후기 군복을 대표하는 협수 ‧ 전복 ‧ 전립의 일습이 착용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조 연간에는 계급과 의례에 따른 군복의 착용 방식과 색상 등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면서 전립 착용 또한 함께 의논되었다(SJW, 1727, Mar 4; 1729, Feb 7; 1729 Aug 12; 1731, Aug 13). 정조 17년(1793)에는 군복과 융복이 혼용되는 폐단이 있어, 다양한 논의가 오갔으나 결국 융복의 폐지 여부에 합의를 이루지는 못하였다(Park & Lee, 2004). 또한 전립에 대해서는 신분 계층에 따른 입식의 종류가 구별될 것이 논의되었는데(Jang, 2007), 이는 그만큼 군모로서 전립의 착용이 상하를 나누지 않고 널리 착용되었음을 의미한다.
군복의 제도가 조선 말기까지 이어진 만큼 군인들의 전립 착용이 계속되었으며, 하층민들도 계속해서 전립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종 32년(1895)에 육군 복장 규칙이 반포되어(Gojongsillok, 1895, Apr 9), 기존 군복이 폐지되면서 전립은 군모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으며, 급격한 의생활의 변화 속에 일반인들이 전립을 착용하는 일도 점차 줄어들게 된다.
Ⅳ. 조선시대 전립의 유형과 특징
1. 조선 전기의 전립
조선 전기의 전립은 그 유형과 형태, 장식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회화 및 실물 유물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비롯한 여러 문헌 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를 통해 그 유형과 특징을 추정해보고자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 초기 중국으로부터 무역이나 예물의 형식으로 전립이 유입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 8년(1426) 남원 부사(府使) 박희중(朴熙中, 1364–1446)은 관청에 있는 포화(布貨)로 전립과 백은(白銀)을 사무역을 하다 처벌받았으며(Sejongsillok, 1426, Apr 19), 세종 12년(1430)에는 명의 사신 진입(眞立)이 동궁에게 단자(段子) 7필과 흑전립 1개를 바친 기록도 있다(Sejongsillok, 1430, Jan 28). 조선과 명의 전립이 모두 원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 시기 양국의 전립은 상호 유사성이 많았을 것이다. 비록 당시 전립의 형태는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원 ‧ 명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그 형태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세종 25년(1443)과 26년(1444), 일본에 보낸 선물 목록 가운데 홍전모와 그 부속인 ‘상모(象毛) ‧ 옥정자(玉頂子) ‧ 도금(鍍金) 혹은 도은(鍍銀)한 대옥(臺玉) ‧ 압영아(壓纓兒) ‧ 자초영(紫綃纓)’의 기록은 조선 전기 전모의 유형과 장식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Sejongsillok, 1443, Feb 21; 1444, Jan 21). 상모는 새의 깃털이나 말갈기 등 동물의 털을 사용해 만든 붉은색 이삭모양[穗子]의 장식이다. 정자는 옥(玉) ‧ 금(金) ‧ 은(銀) 등의 보석을 사용하여, 새 ‧ 산수화 ‧ 기하학문양 등을 표면에 음각 기법으로 새겨넣은 장식이다. 상모와 정자는 모두 모정에 달아 장식한다. 압영아는 운월아(雲月兒) 또는 운엽아(雲葉兒)라고도 하며 갓 좌우에 부착하던 소형의 장식이며(Jang, 2003), 자초영은 전립 양태의 테두리를 두른 끈 혹은 갓을 머리에 고정하기 위한 끈으로 추정된다. 대옥은 아직 그 형태나 용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성종조에는 임금이 신하들에게 침향(沈香)으로 만든 끈이 달린 전립을 하사한 기록이 빈번하여(Seungjongsillok, 1469, Dec 2; 1474, Aug 19; 1476, Aug 4), 침향 소재의 끈이 선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기록을 통해 조선 전기에는 홍전립, 흑전립 등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전립이 있었으며, 전립에 부착하는 장식의 구성 역시 조선 후기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장식은 상류층에 한정되었을 확률이 크다고 보며, 전립을 일상적으로 착용한 서민들의 경우 장식이 많지 않은 전립을 착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2. 조선 후기의 전립
조선 후기 전립의 유형을 문헌 기록과 회화 자료에 근거하여 구분하고, 유물을 통해 그 특징을 보다 실증적으로 파악해 보고자 한다.
조선 후기 전립은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모의 종류가 달라, 포졸과 같은 하급 군졸, 하인, 평민, 속오군 등은 주로 우모(牛毛)나 잡털을 다져 만든 모립(毛笠)을 착용하였고(Jungjosillok, 1799, Sep 16; SJW, 1638, Mar 9), 이를 벙거지라고도 불렀다. 풍속화에 그려진 <Fig. 7>, <Fig. 8>, <Fig. 9>의 인물들을 통해 기록에서 말하는 하층민들의 착용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숙종 연간에는 우역(牛疫)이 발생하여, 상한(常漢)의 전립을 소털로 만들 수 없게 되어 모두 종이 끈으로 전립을 제조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SJW, 1683, Sep 2), 이는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착용하는 전립이 주로 우모로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하층민이 쓰는 전립의 제작과 판매는 우모전(牛毛廛)에서 담당했는데, 각종 털로 전립을 만들어 판매하는 전립전(氈笠廛)에서 우모 전립까지 만들어 판매하면서 당시에 잦은 송사가 있었다(Ilseongnok, 1784, Mar 20; SJW, 1783, Nov 29).
19세기 말 조선의 풍속을 담은 《기산풍속도》에 벙거지는 <Fig. 10>처럼 모벙거지와 털벙거지 두 종류가 그려졌다. 모벙거지는 표면이 다소 정돈되어 있으나 비교적 울퉁불퉁한 형태이며, 털벙거지는 표면에 정돈되지 않은 거친 모의 질감이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모벙거지와 털벙거지 표면 질감의 차이를 미국 뉴어크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 <Fig. 11>과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에 소장 중인 19세기 후반의 유물 <Fig. 12>에서 각각 잘 관찰할 수 있다. <Fig. 11>의 전립은 표면이 잘 다져져 마무리된 반면, <Fig. 12>는 다져진 전립 표면 위로 털이 흩뿌려진 듯이 부착되어 있어 차이가 있다.
Mo and Teol-bonggeoji in Gisan’s Genre painting (Korean Christian Museum at Soongsil University [KCMSU], n.d.)
《기산풍속도》 속 털벙거지에는 정자와 상모, 귓돈 등이 달려 있다. 귓돈은 조선 초기 전립의 측면 장식이었던 운월아가 변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소재와 형태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Jang, 2011), 회화와 유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불수(佛手) 형상의 밀화 장식 한 쌍이다. 장식의 유무에 따른 벙거지의 차이는 <Fig. 13>인 《모당 홍이상 평생도》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그림에 가마꾼들은 장식이 없는 단순한 벙거지를 착용한 반면, 등촉을 들고 있거나 일행 앞뒤를 호위하는 이들은 정자와 상모로 꾸며진 벙거지를 착용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예로부터 말이나 소의 털인 우모를 굳혀 만든 노동용 모자를 털벌립, 털벙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진상 품목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민란 때 군모로 썼음을 현지 주민이 증언한 바가 있다(Ko, 1991). <Fig. 14>의 제주 털벌립은 우모 색상이 노란색으로, 이러한 벙거지가 《기산풍속도》에 그려진 <Fig. 15>와 같은 노랑벙거지라고 생각된다. <Fig. 16>은 18세기 화가 조영석(趙榮祏)의「말징박기」라는 작품으로 노란색 벙거지를 착용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기산풍속도》에는 <Fig. 17>처럼 모를 다져 만들되, 정자와 상모, 공작우(孔雀羽), 귓돈, 갓끈 등을 갖춘 것을 벙거지와 달리 전립이라 하였으며, 그 종류를 앞선 벙거지에서와 같이 전립과 털전립으로 나누어 묘사하였다. 헌종 7년 3월 14일의 실록에 의하면, ‘근래에 장신(將臣) 모두 죽전립(竹戰笠)을 착용하고 있는데, 이제부터는 옛 제도대로 모전립(毛戰笠)을 착용하라고 분부하라’라는 언급이 있다(Hunjongsillok, 1841, Mar 14). 여기서 모전립은 무관 계급이 착용하는 털[毛]로 만든 전립으로 이해되며, 이는 하층민이 착용하는 벙거지 혹은 이후 설명한 대나무로 만든 죽전립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기산풍속도》에 그려진 전립과 털전립을 모전립이라는 용어 내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물론 문헌에 등장하는 ‘모전립’이 반드시 ‘털전립’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산풍속도》 <Fig. 10>의 벙거지를 모벙거지와 털벙거지로 구분하여 사용한 사례를 고려할 때, 모전립은 질감보다는 털이라는 재질을 사용한 전립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으로 본다.
전승되는 유물 중에 모전립과 털전립 모두 원형과 장식을 온전히 보존한 것은 매우 드물다. 현재로서는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소장된 전립 <Fig. 18>이 패영(貝纓)은 달려 있지 않지만,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한 유물이라고 생각된다. 이 전립은 표면 질감으로 보아 《기산풍속도》에서 말하는 털전립으로 생각되며, 이처럼 장식을 모두 갖추되 <Fig. 17>처럼 표면을 매끄럽게 한 전립의 유형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이처럼 장식이 다양한 고급 전립은 주로 돼지털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 저모립(豬毛笠)이라 부르기도 했다.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1783)에서는 군복을 차릴 때 저모립을 착용한다고 하였으며(Yu, 1783), 『북경록(北京錄)』(1826)에는 사행을 떠나는 사신들은 압록강을 건넌 뒤 군복을 입기 때문에 저모립을 준비한다는 내용이 있다(Sin, 1826).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당상관이 저모립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Kang et al., 2015),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1840)에 의하면 저모립은 당하관이 착용하는 것으로 기록되어(Sung, 1840), 실제로는 관리들이라면 누구나 저모립을 착용할 수는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모전립 중에는 <Fig. 19>와 같이 모자 테두리 안쪽에 비단을 덧댄 고급품인 안올림벙거지가 있다. 착용자의 높은 신분을 고려하면 저모립에 덧댔을 것으로 생각된다. 안올림벙거지는 품계가 높은 무관들이 쓰는 것으로 알려졌지만(National Folk Museum of Korea[NFMK], 2017), 『수사록(隨槎錄)』(1831)에 군뢰들의 전립에도 무늬를 놓은 남색 비단으로 안을 댔다는 기록도 있다(Han, 1831). Kang(1995)의 연구에서는 <Fig. 20>처럼 금군이 착용한 전립의 안감 색상을 흰색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또한 일본 도쿄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조선통신사 인물화 중 상관(上官) 군인인 <Fig. 21>에서는 안에 붉은 안감을 받친 전립이 확인되기도 한다. 이는 극소수의 사례에 해당하며, 이를 제외하면 대체로 푸른 비단을 댄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선 후기 모전립의 주요 장식은 정자·상모·공작우·귓돈·갓끈 등으로, 벙거지와 달리 공작우가 추가되며 정자와 갓끈 등도 벙거지에 다는 것보다 한층 귀한 소재로 만든다. 조선 후기 전립을 널리 착용하게 되면서 상류층은 물론, 신분이 높지 않은 이들도 앞다투어 전립에 사치하는 현상이 있었다. 영조 6년(1730)의 승정원일기에는 서리가 공인들에게 저모립, 자수정영자(紫水晶纓子), 공작우, 홍의를 바치는 폐단이 기록되었고(SJW, 1730, Dec 20), 이덕무(李德懋, 1741–1793)도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말꼬리와 돼지털로 만든 갓에 호수와 푸른 깃으로 장식하는 폐단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Lee, n.d.).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 10년(1786)까지는 전립의 장식을 과하게 금지할 필요성이 없는 것으로 논의되었다(Jungjosillok, 1786, May 25; SJW, 1786, Jun 11). 그러나 점차 사치가 과해지자, 정조 17년(1793)에는 금제를 통해 신분 규정을 강화할 필요성이 다시금 대두되었다. 이에 직품(職品)을 전립의 상정자(上頂子)로 간략히 나타내어, 도금 ‧ 조금(雕金) ‧ 순은(純銀) ‧ 누은(鏤銀) ‧ 종결(鬃結) 등의 부류로 구분하여 신분을 식별하도록 하였다(Jungjosillok, 1793, Oct 8). <Table 1>은 현존 정자 유물을 재료별로 분류한 것으로, 조금과 누은의 형태를 띤 정자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유리 ‧ 나무 ‧ 섬유로 된 정자 장식을 유물에서 확인하였다. 이로 미루어보아 금 ‧ 은 ‧ 옥외에도 다양한 소재로 정자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조 연간 전립 장식의 규제에는 갓끈, 삽우(揷羽)도 포함되었다. 갓끈에 대한 논의는 본래 갓의 사치에 대한 논의에서 비롯되었으나, 이후 전립에 쓰는 갓끈에까지 확장되었다. 정조 15년(1791)에는 전립 갓끈의 사치가 심해져 당하관 이하는 호박 갓끈을 일체 금하고 자만호(紫璊瑚)나 자수정을 쓰라고 하였다(Jungjosillok, 1791, May 18). 또한『임하필기』에서는 옛날에 큰 구슬을 꿴 전립의 끈 끝을 턱 아래까지 드리웠는데 정조대 이후 옛 제도와 달라져 공사복에는 패영이 모두 없어졌으나 무인은 군인이기에 그 제한이 없었다고 한다(Lee, 1871). 이는 김홍도(金弘道, 1745–1806)가 그린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Fig. 22>는 연회장 양옆에 도열한 하급 군인과 단상 위의 무관을 묘사한 모습이다. 하급 군인은 끈으로만 된 사영(絲纓)을 착용하고 있는 반면, 직급이 높아 보이는 무관은 패영을 달고 있으며 이는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 박물관 소장 유물인 <Fig. 23>과 그 형태가 유사하다.
Yeong-ja Ornaments by Lower(L) and Higher-ranking(R) Soldiers (National Gugak Center [NGC], 2001, p. 192)
Yeong-ja Ornament of Jeolrip (Museum am Rothenbaum – Kulturen und Künste derWelt [MARKK], 2017, p. 213)
공작우는 정자 끝에 달리는 장식이다. 선조대 무렵부터 왕을 포함한 조정의 관원들이 공작의 꽁지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Seonjosillok, 1597, Sep 6). 상모가 조선 전기부터 있었던 반면, 공작우는 비교적 후대에 추가된 것이다. 상모와 공작우는 계급에 따라 그 착용 여부가 달랐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조선 후기 회화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1783년 정조가 부모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존호를 추상(追上)한 의례를 기념하고자 제작된 《진하도(陳賀圖)》 <Fig. 24>와 《화성능행도병풍(華城陵幸圖屛風)》 <Fig. 25>에 묘사된 군인들의 전립을 살펴보면, 하급 군인의 전립에는 상모만 달려 있으며, 직급이 높은 무관의 전립에는 상모와 공작우를 함께 다는 경향이 확인된다.
한편, 조선 후기에는 상모와 공작우 또한 사치품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진다. 『임하필기』에는 전립에 패영·공작우·상모를 의미도 없이 화려하게 꾸미는 세태가 지적되었다(Lee, n.d.). 순조대에도 조정에서 새 깃털을 꽂는 형식을 버려야 한다는 논의가 실록에 기록되었다(Sunjosillok, 1834, May 29). 모전립의 이와 같은 과시적인 장식 경향은 이어서 살펴볼 갓전립에서도 나타난다.
《기산풍속도》에는 <Fig. 26>과 같이 두 종류의 갓전립이 그려져 있다. 이 모자들은 외형과 장식이 모전립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흑립처럼 대나무나 말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갓전립으로 불렀으며, 모로 만든 것보다는 시원하기에 양전립(涼戰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립을 말총으로 만들 때는 총립(驄笠), 종전립(鬉戰笠), 종립(鬉笠) 등으로 불렀다. <Fig. 27>은 독일 라이프치히 박물관 소장 총전립으로 모전립과 달리 모자 내부가 반투명해 보일 정도로 말총이 엮여 제작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인조 연간 총립을 제주에서 구매하여 값을 치르는 기사가 있어(SJW, 1648, Dec 12), 적어도 17세기에 총립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에는 총립의 유행과 이를 규제하는 기사가 많이 보인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무신들이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 모두에서 모립과 총립을 사용한다는 기록이 있고(Lee, n.d.), 영조 25년(1749)의 승정원일기에는 무장들이 사치로 종전립을 쓴다는 언급이 있다(SJW, 1749, Sep 21). 이에 영조 26년(1750)에는 탄환과 화살촉 방어에 유리한 모립을 두고 군병의 전립에 종립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다(Lee, n.d.).
한편, 죽전립(竹戰笠)은 죽사(竹絲)를 엮어 만든 것이다.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 박물관 소장 갓전립 <Fig. 28>은 <Fig. 27>의 유물과 같이 내부가 반투명한 전립의 일종인데, 대우에 결손된 부위를 잘 살펴보면 옻칠이 벗겨진 부분에 대나무를 얇게 쪼갠 죽사 본래의 색상이 드러나 있다. 이를 보아 해당 유물은 죽전립인 것으로 추정된다.
『북새기략』에 북관의 병수(兵帥, 병마절도사)와 읍재(邑宰, 수령)는 죽직립(竹織笠)을 쓰는데, 전립과 그 모양이 같다고 한 기록이 있어(Hong, n.d.), 적어도 18세기 후반쯤 이미 죽전립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죽전립은 19세기에 들어 한층 더 유행하여, 특히 순조–헌종 연간에 관련 기록이 집중된다. 헌종 7년(1841)에는 당시에 장신들이 모두 죽전립을 쓰기에 옛 관례대로 모전립을 착용할 것을 명할 정도였다(Hunjongsillok, 1841, Mar 14). 순조 연간의 사행 기록인 『계산기정(薊山紀程)』(1803)과 『몽경당일사(夢經堂日史)』(1855)에 사신이 대로 짠 양전립을 착용하였다거나, 사신 일행을 호위하는 반당(伴倘)들도 죽사전립(竹絲戰笠)을 착용했다는 기록이 있다(Gyesan-gijeong, 1803, Nov 24; Seo, 1855, Oct 27). 이러한 경향은 고종대까지도 이어져, 『대전회통(大典會通)』(1865) 예전(禮典) 의장(儀章) 「행행시(行幸時)」편에 따르면, 임금이 행행할 때에 승지(承旨), 사관(史官) 등이 죽전립을 착용하여, 고종 1년(1864)에 옛 방식대로 모전립을 착용하도록 하는 논의가 있었다(Daejeon-hoetong, 1865; SJW, 1864 May 10). 이상의 기록과 같이 영조 연간에는 주로 총전립의 사치에 대한 기록이, 현종에서 고종 연간까지 죽전립에 대한 사치 금제에 대한 기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를 통해 갓전립의 유행 경향이 총전립에서 죽전립으로 이동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편, 죽전립에는 말총이나 오사(烏紗)를 덧씌우기도 했다. 조선 후기 갓전립에 대해 논할 때, <Fig. 29>의 철종(哲宗, 1849–1863) 군복 어진은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자료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상방정례(尙方定例)』에 능행(陵幸) 시 왕은 마미두면(馬尾頭冕)을 쓴다고 하였으며(Sangbang-Jeongnye, 1749),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정조가 대사례 시 융복용 두면으로 자립(紫笠)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Hongjae-Jeonseo, 1799). Kim and Lee(2021)는 온양민속박물관 소장의 자립과 국가무형문화재 갓일 이수자 박형박의 작품을 예로 들어, 기록 속 자립을 ‘죽모자(竹帽子)와 양태[凉臺]를 붙인 갓에 총모자(驄帽子)와 총결조(總結造)를 씌워 완성한 것’으로 추정하였고, 최고급품으로서 철종의 전립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았다. 한편, 『수사록』(1831)에 따르면, 한필교(韓弼敎, 1807–1878)가 청나라 사신으로 압록강을 건너기 전 군복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오사전립(烏紗戰笠)을 착용한다고 하여 검은 사(紗)를 덧씌운 갓전립이 있었음이 충분히 짐작되지만(Han, 1831), 현재까지 관련 유물은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홍전립은 이미 조선 전기의 기록에도 보이지만, 후기에는 숙종대부터 그 착용 계층과 장식이 더욱 명확해졌다. 숙종 35년(1709)의 기록에 의하면, 이 시기 각 지방 군병들은 홍전립을 착용하고 있었으며(SJW, 1709, Mar 19), 이들이 착용하는 홍전립에는 용자(勇字) 장식이 부착되었다. 영조 7년(1731)의 실록에 홍전립이 뇌자(牢子)의 전립임이 기록되었고, 동왕 45년(1769)에 홍전립에 으레 상모와 용자 장식을 다는 것임이 확인된다(Youngjosillok, 1731, Jul 18). 영조 연간의 『금위영등록(禁衛營謄錄)』(1755)에는 군용품을 개비(改備)하는 물품 중에 홍전립과 용자 장식이 지속적으로 언급되어 용자 장식은 홍전립의 주요한 장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Geumwiyeong-Dunglok, 1755, Feb 24). 홍전립에 용자 장식을 다는 것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명에서는 <Fig. 30>와 같이 초기부터 군사들에게 용자가 박힌 붉은 투구를 씌우기도 했으므로, 임란 이후 명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뇌자, 군뢰의 용자 전립은 보통 홍색이었지만, 뇌자의 전립은 천릉시 백색으로 변경되기도 하였다(SJW, 1731, Aug 13). 영조 7년(1731) 천릉시 뇌자의 홍전립을 백전으로 하고 그대로 용(勇)자를 붙이라고 하였고(Youngjosillok, 1731, Jul 18), 정조 연간 이후로는 뇌자의 복색이 홍전립이 아닌 전립으로만 묘사되기도 하였다. 이에 초기 홍전립은 군용으로서 점차 색상보다는 용자 장식의 특성이 강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선 후기 유물로는 <Fig. 31>, <Fig. 32>과 같이 홍전립, 흑전립 등이 모두 남겨져 있다.
Ⅴ. 결론
본 연구는 기록과 회화, 유물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입제의 일종인 전립의 유래와 착용 양상, 유형별 특징을 분석한 것이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얻었다.
전립은 모직물 모자[氈帽]에서 기원한 것으로, 중국의 사료를 통해 이민족의 모자로 여겨졌던 전모가 점차 그 보온성과 기능성을 인정받아 군용으로 착용되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도 고대에는 북방 유목 민족적 관습의 영향으로 전모를 착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나, 전립의 착용이 명확해지는 시점은 원과의 교류가 많았던 고려시대부터이다. 고려의 습속을 이어 조선시대에도 전립을 계속 착용했으며 조선과 명 모두 원의 유제가 남아있는 가운데, 양국 간 교류를 통해 비슷한 양식을 공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립의 착용이 확산된 것은 양난 이후이다. 전립은 실용성을 인정받아 하층민과 금군 등 군인들에게 적극적으로 권장되었고, 광해군 ‧ 인조 연간을 거쳐 군복의 일부로 제도화되었다. 효종 이후 협수 ‧ 전복과 함께 군복 일습으로 정착하였고, 영조 ‧ 정조대에는 계급에 따른 색상과 장식의 구분이 논의될 만큼 널리 보급되었다. 그러나 1895년 고종의 군복 개혁으로 군모로서의 기능을 잃고, 일반인의 착용도 점차 사라졌다.
조선 전기 전립의 형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원의 유제를 이어받고, 명과도 교류한 흔적을 볼 때 원의 발립처럼 둥근 모정과 차양으로 이루어진 구조였을 것으로 본다. 입식의 종류로는 상모, 정자, 패영 등이 거론되며 장식적인 면에서 조선 후기의 전립과 그 조형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임란 이후 전립의 착용이 확산되면서, 전립의 종류도 더 다양해졌다. 하층민은 주로 우모나 잡털을 다져 만든 장식 없는 벙거지를 착용하였고, 여기에 정자와 상모 등 가벼운 장식을 하기도 했다. 돼지털을 다져 만든 전립은 저모립이라 하였으며, 챙 안쪽에 비단을 덧대 마무리한 것은 안올림벙거지라고 하였는데 고급품으로서 주로는 상류층 사이에서 애용되었다. 여기에는 보패류로 만든 정자나 패영과 더불어 상모, 공작우 등을 달아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후기로 갈수록 그 양상이 과열되어 조정에서 신분에 따른 소재의 사용을 규제할 정도였다. 갓전립은 양전립이라고도 하며 말총이나 대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이는 기능성보다는 심미성을 위한 것으로 기록에 의하면 말총 전립은 18세기, 19세기에는 죽전립이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홍전립은 색상이 홍색이라는 점도 기타의 유형과 구별되지만, 전립 전면의 용자 장식이 가장 큰 특징이다. 용자 장식은 임란을 기점으로 명에서부터 영향을 받아 생긴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뇌자들이 용자 장식이 달린 홍전립을 착용했으나, 후기에는 흑전립에도 용자 장식이 달리기도 하여 뇌자의 전립에는 색상보다 점차 장식이 중요한 요소로 남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전립의 유래와 확산 과정을 다른 문화권과 비교하여 그 연결점과 상호 유사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문헌과 유물을 상세히 탐구하여 전립의 장식에 관해 집중했던 기존 연구에서 보다 소재에 따른 전립의 유형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시대성을 고려하여 각 유형의 특징을 정밀하게 고찰하였다. 이 연구 결과는 조선시대 관모의 종류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며, 향후 기녀의 전립 및 관련 유물 분석 등 후속 연구를 통해 조선시대 전립의 이해를 더욱 확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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