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Article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5, No. 3, pp.46-65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Jun 2025
Received 12 Mar 2025 Revised 20 Jun 2025 Accepted 25 Jun 2025
DOI: https://doi.org/10.7233/jksc.2025.75.3.046

18세기 후기 남아 돌복 전통복식 콘텐츠 개발 : 김홍도의 모당 평생도 복식을 중심으로

임정미 ; 김다민 ; 이종훈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패션디자인전공 강사
중앙대학교 디자인학과 박사
+동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Development of Traditional Costume Contents for Late 18th-Century Boy’s First Birthday Outfit : Focusing on the Costumes in Kim Hong-do’s Modang Pyeongsaengdo
Jeong Mee Lim ; Damin Kim ; Jong Hoon Lee
Instructor, Dept. of Fashion Design, Chung-Ang University
Ph.D., Dept. of Design, Chung-Ang University
+Professor, Dept. of Culture Contents, Dong-Guk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Jong hoon Lee, e-mail: leelim3@dongguk.edu

Abstract

This study aimed to develop traditional costume content based on genre paintings from the late 18th-century Joseon period. By using Kim Hong-do's works as a foundation, this study creates a boy's first birthday outfit (dolbok) and explores the possibility of developing content based on historical records. The results of the study were as follows. First, this study proposed an 18th-century boy's dolbok consisting of a colorful vest (saekdong banbi), a small outer robe (sochangui), a jacket (jeogori), and pants (baji), departing from the 19th-century court costume dolbok form. It was produced in a form suitable for modern design based on historical verification by referring to costume relics and previous studies. Second, in order to produce four types of costumes, ancient documents, previous studies, excavated costume reports, and genre painting studies were comprehensively analyzed to determine the mesurements, colors, materials, and wearing methods so that they could be turned into costume content. Third, based on the results of these analyses, a boy's dolbok was produced. It was intended to produce it in a form close to 18th-century costume by realizing the composition and sewing methods of the 18th-century. This study expands costume history research by utilizing genre paintings as historical materials and presenting a process for developing precise traditional costume content. However, the potential for expressive distortion in genre paintings and the omission of certain accessories, such as the belt (doltti) and headdress (saekdong gulle), remain as limitations.

Keywords:

baji, genre paintings, jeogori, saekdong banbi, sochangui, traditional costume content

키워드:

바지, 풍속화, 저고리, 색동반비, 소창의, 전통복식콘텐츠

Ⅰ. 서론

2024년 9월 15일 국회 본회의는 전통문화산업진흥법 시행을 결정하였다. 전통문화의 가치인식으로 17년 만에 이룬 쾌거라 할 수 있으며 법 시행과 동시에 전통문화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시점이다. 전통문화산업진흥법은 '전통문화'를 우리 민족의 문화적 자산으로 보존하고 개발할 가치가 있는 전통예술과 전통생활양식으로 정의하며, '전통문화상품'은 전통문화 분야에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유・무형의 재화・서비스 및 이들의 복합체로 지칭한다(Kim et al., 2024). 문화체육관광부는 '전통문화산업 진흥 중기계획 수립을 위한 권역별 토론회'를 진행하는 등 전통콘텐츠를 활용한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 본 연구는 전통문화콘텐츠 개발에 있어 경제적 가치에만 치우치지 않고 복식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한 전통복식콘텐츠의 개발을 통해 원형의 보존을 실현하는 동시에 전통미를 유지하며 복식콘텐츠의 활용과 응용이 조화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18세기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16)의 모당 홍이상(慕堂 洪履祥, 1549∼1615) 평생도 8폭 중 첫 번째 장면인 초도호연(初度弧筵)의 돌쟁이 돌복 일습 중 의복류의 제작과정을 제시하였다.

선행연구로 전통복식을 소재로 콘텐츠화 한 연구는 기록과 유물에 의거하여 18세기 초 상류층 여아 복식을 재현하여 착용 가능한 콘텐츠로 제시한 연구(Choi, 2022), 철릭의 기능적 특성에 의미를 부여하여 택견전통문화융합형 공연의상 디자인과정 연구(Soh, 2017), 백제복식을 토대로 현대에 공무복으로 디자인한 연구(La & Jeong, 2014)등이 있다. 김홍도 작품 속 복식 연구로 Son and Im(1985), Jo(2000), Kim(2016)은 사실주의 회화 속 다양한 계층 인물의 복식을 분석함으로써 기존 궁중복식 중심에서 민서복연구로 복식연구의 장을 확장하였다.

연구내용과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문화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점에 사료를 기반으로 하며 한국적 미학을 담은 전통복식콘텐츠 개발의 중요성을 제기한다. 둘째, 18세기 김홍도 『모당 홍이상』 평생도 회화작품 중 돌잔치 장면에 등장하는 1세 남아 돌복 의복을 문헌연구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풍속화 실견 분석을 바탕으로 속저고리, 바지, 소창의, 색동반비로 정리하여 연구범위를 한정한다. 셋째, 고문헌・선행연구・출토복식・풍속화 보고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치수, 색상, 소재 등을 도출한다. 구체적으로는 18세기에 근접한 출토 유물 보고서와 연구로 조선시대 아동복식 자료가 부족한 가운데 시기적으로 근접한 홍우협(1655~1691), 탐릉군(1663~1731), 해평윤씨(17c 중후반 추정)의 아동복 출토 유물을 참고한다. 또한 아동복은 성인의 의복을 축소한 것과 같은 형태임을 고려하여(Ha, 2000), 18세기에 염습된 성인 남성 출토 유물인 남오성(1642~1712), 의원군(1661~1722), 이태곤(1672~1763), 밀창군(1677~1746), 홍감보(1699~1763), 이익정(1699~1782)의 출토 유물과 보고서, 논문을 활용하여 회화작품 속 평생도 복식에 더해 역사적 근거를 뒷받침하고 보완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1세 남아 전통복식의 실물 제작을 수행한다.

일반적으로 현대 남아 돌복은 조선후기 『궁중발기』에 기록된 저고리, 풍차바지, 오방장두루마기, 전복, 복건의 형태로 계승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 연구에서 제시하는 돌복은 궁중이 아닌 반가의 돌복으로 그 특성을 고찰하여 전통복식콘텐츠화 하고자 한다. 현대 1세 어린이의 착용 및 시연을 고려하여, 18세기 남성 신장과 현대 1세 유아 표준 신장의 비율을 고려하여 제작에 필요한 각 치수를 도출하였다. 본 연구는 전통복식을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에 착의 가능한 실용적인 복식콘텐츠 디자인의 과정을 밝히며 콘텐츠 제작의 예를 제시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이는 정형화된 전통 돌복의 개념을 확장하면서도 전통에 근거한 올바른 콘텐츠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 의의가 있겠다. 이러한 접근은 전통복식의 미학적 본질을 보존하면서 현대적 활용 모델을 창출함으로써, 18세기 한복의 제작 교육이나 어린이 돌복 제품 생산 개발로의 활용 등 한국 복식문화의 지속적 진화 경로를 개척할 것으로 기대된다.


Ⅱ. 전통복식문화콘텐츠 개발의 의의와 평생도 복식

1. 전통복식문화콘텐츠 개발의 의의

전통은 현재와 미래의 삶을 지탱하는 토대가 된다. 이러한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고, 이를 보존하는 일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인류의 과업이다. 이러한 가치와 지향점에 동의하는 세계 각국은 각각의 전통을 보호하고 활용하는 일에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우리나라도 1962년에 「문화재 보호법」을 제정하고 문화재의 보존에 경주해 왔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체계적 관리가 최근에 다소 큰 변화를 맞이했다. 2023년 5월 16일에 「국가유산기본법」을 제정하면서 기존의 '문화재'란 용어는 '국가유산'으로 대체되었고, '문화재청'은 '국가유산청'으로 재출범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 제도적 영역에서 사용해왔던 '문화재(cultural property)' 개념을 '유산(heritage)' 개념으로 전면 대체한다는 점에 가장 가시적인 특징이 있다(Jeon, 2024). 이와 함께 기존의 「문화재 보호법」이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로, 「무형문화재 보존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 「무형유산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었고,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이 새로이 제정되었다.

「국가유산기본법」 제정과 관련 법률 체계의 정비는 용어의 변경보다 훨씬 큰 변화를 내포한다. '일본 문화재보호법을 답습하고 있던 구시대적인 법의 목적을 국가유산의 보호는 물론 창조적 계승과 국민의 문화향유까지 포괄하는 미래지향적인 내용으로 규정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이다(Joo, 2023). 더 나아가 유산의 가치 인식, 지정 과정, 보호・관리 문제뿐만 아니라 현재적 활용과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성의 차원까지 확장하고 포괄하려는 새로운 헤리티지 패러다임의 도래를 함의한다(Jeon, 2024). 기실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은 전신인 「문화재 보호법」이 처음 제정될 때부터 '문화재 활용'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법'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화재의 활용보다는 보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활용에 관한 사항은 다소 포괄적이며 추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제22조의2에 '문화유산교육의 진흥'이나 제22조의9에 '문화유산지능정보화 정책의 추진' 정도에 그친다(Act on Conservation and Utilization of Cultural Heritage, 2024a; Act on Conservation and Utilization of Cultural Heritage, 2024b).

활용은 보존이나 관리보다는 더욱 적극적인 실천이다. 그러나 보존이 활용보다 우선시되는 영역에서는 실천 이전에 혼선이나 모호함을 고민하게 되고, 과감한 시도를 하려면 적지 않은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자칫 보존의 가치와 대립하는 분쟁의 소지를 필연적으로 안고 있다. 당연히 보존을 강조하면 활용에 대한 상상력과 시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Lee & Choi, 2023).

「국가유산기본법」은 '국가유산의 보존, 관리 및 활용'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으로 하고,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과 다르게 '창조적으로' 계승한다고 하였다(Framework Act on National Heritage, 2024). '활용'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나 보존에 방점을 찍고, 매우 소극적인 '활용'에 머물렀던 기존의 태도에 '창조적'이라는 개념적 전환을 시도하여 여러 다양한 방향으로의 변화와 응용, 발산을 새로운 지향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지향점의 전환과 전통문화의 미래지향적인 활용은 「전통문화산업 진흥법」의 제정으로 보다 체계적인 접근의 법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위 법령은 '전통문화산업진흥기본계획'과 '전통문화산업 진흥을 위한 각종 시책'의 수립과 시행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규정하였다. 전통문화의 산업적 활용과 발전, 그로 인한 문화적 삶의 질 향상과 경제발전을 구체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전통복식 콘텐츠의 개발도 「국가유산기본법」과 「전통문화산업 진흥법」이 함의하고 있는 지향점과 맥락을 같이한다. 전통복식을 활용하는 콘텐츠를 대하는 그간의 태도들은 지향점이나 가치 기준의 차이점으로 인하여 많은 논쟁을 낳았다.

관련한 역사 학계나 전통의 가치에 방점을 둔 기관들은 철저한 고증에 기반한 보존을 중시하였다. 반면에 디자인이나 산업화에 초점을 둔 산업체나 디자이너들은 현대적인 변용과 사업 효율성에 경도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태도와 관점의 대립은 전통과 현대의 접합에 작지 않은 장애요소가 되기도 한다.

왕실이나 사대부의 복식은 일정 정도의 자료가 남아 고증을 통한 보존과 이른 바탕으로 한 현대적 응용과 융합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특히 사회적 지배력이 약했던 민중이나 서민의 복식, 혹은 아동의 복식은 고증의 자료가 충분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전통의 보존과 현대적 변용이 대립하기도 한다. 더하여 창조적인 계승이나 현대적인 삶에 대입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애로가 발생한다.

문화적 가치가 있는 복식의 영역에서 보존과 미래지향적 응용은 필연적으로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 고증과 보존에만 치중한다면 역사적 산물로 전시하는 유물에 머물게 될 뿐, 지금과 미래에 활용 가능한, 실제 일상에서 착용 가능한 복식으로 생산하기 어렵고, 현대적 활용과 미적 감각만을 추구한다면 전통에 대한 문화적 가치가 쉽게 사라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인 복식의 양식과 미의 계승, 제작 방법의 학술적 정립은 창조라는 기치로 인하여 뒷전으로 미룰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다. 전통과 창조, 전통의 지향과 미래의 지향은 한복을 중심에 두고 끊임없이 소통하여 조화를 추구해야 하는 길항의 관계에 있다.

「국가유산기본법」 제정의 중요한 계기가 된 (Korea Heritage Service, 2023) 유네스코에서는 '유산이란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아 오늘날 그 속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산이다.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모두 다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과 영감의 원천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의 삶에 생생하게 접합되는 유산, 미래지향적으로 삶에 작동하는 유산의 가치와 이를 위한 인류의 노력을 전제한다.

전통의 높은 가치는 다만 확인, 인정, 보존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면면히 이어온 소중한 가치가 지금의 삶과 소통할 때 더욱 빛을 발하며 현재의 바탕을 이루고 미래를 돋우는 살아있는 가치가 된다(Lee & Choi, 2023). 전통복식 콘텐츠의 개발은 이러한 고증과 보존, 더불어 활용과 응용이 조화롭게 추구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의 지속이 살아있는 전통의 가능성을 넓힐 수 있다. 더욱이 그간의 학계에서 주변에 머물렀던 아동의 복식을 면밀히 탐구하고 이를 전통의 방식에 적합하게 이해하는 과정은 지배층의 전통복식에서 벗어나 일상의 복식으로 전통복식을 재창조하는 과정의 밑받침이 될 수 있다.

2. 김홍도(金弘道)의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 평생도 초도호연(初度弧筵) 복식 분석

평생도는(平生圖)는 18세기 후반 풍속화의 발달과 함께 탄생한 화제(畫題)로서 이상적이고 길상적인 요소가 강한 일종의 풍속화이다("Pyeongsaengdo", n.d.). 이 시기의 풍속화는 일반 서민들의 생활상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데 이것은 조선 후기에 일어난 사회 전반적인 변화, 즉 '시민의식의 성장'과 '실학사상'등과 무관하지 않았다(Yang & Kim, 2004). 김홍도는 18세기 후반 사회의 틀이 점차 변화 되는 가운데 지배층이 중세 이념을 고수 하려는 상황 속에서 사회 변화를 인식하고 그것을 자기 예술 세계로 끌어들여 회화적 세련미를 완성한 화가로 인식된다(Yang & Kim, 2004). 영・정조대에 걸친 김홍도의 활동시기는 풍속화의 전성기이다. 사실주의와 개성주의를 지향하는 회화정신은 풍속화 속에서 새로운 영역을 찾아내며 반전하여 화가(畵科)적 위치가 확고해졌다(Oh & Choi, 1998).

평생도는 돌잔치, 혼례 등의 평생의례와 관로(官路)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구성된다. 평생도의 첫번째 장면은 돌잔치, 마지막 장면은 회혼례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현전하는 평생도 중에서는 김홍도의 모당 홍이상의 일생을 담은 평생도 8첩 병풍과 담와 홍계희(淡窩 洪啓禧, 1703~1771)가 주인공인 담와 평생도(淡窩平生圖) 6첩 병풍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특히 모당 평생도 병풍의 내용 구성과 도상은 현전하는 대부분의 평생도가 그대로 따르고 있을 정도로 하나의 범본이 되었다("Pyeongsaengdo", n.d.). 본 연구의 대상인 모당 홍이상 평생도의 첫장면 '초도호연(初度弧筵)'은 기와지붕집을 배경으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돌상을 받는 주인공이 그려져 있다.

18세기 사회상의 변화는 복식에도 변화를 일으켰는데 일상복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복식의 양식이 성립되었고 관복에도 국속화의 경향이 나타났다(Hong et al., 2011). 사실주의적 표현기법의 김홍도 풍속화 속 복식은 조선 후기 생활상을 담아내고 있다.

초도호연의 주인공 복식은 <Fig. 1>과 같다. Kim(2016)은 모당 평생도 인물의 복식 화본을 <Fig. 2>와 같이 제시하였다. 돌쟁이 복식은 소매 끝에 두 줄의 색동이 있는 소창의 위에 둥근 목둘레의 색동반비를 착용한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소창의 자락 사이로 백색 바지와 저고리를 착용한 모습은 Kim(2016)연구를 통해 한정하였다. 이 화본에서 소창의 위에 반비를 착용한 형태가 보여진다. 18~19세기 회화에 나타난 반비의 착용 사례 연구에 따라 긴 자락의 포(袍) 위에 반비를 입은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Lee, 2008). <Fig. 3><Fig. 4><Fig. 5>의 18~19세기 풍속화의 반비 안에 입는 포의 형태는 소창의와 같이 소매가 좁고 길이는 저고리보다 길며 무가 없고 양옆으로 긴 트임이 있는 것으로, 소창의 위에 반비를 입는 착용 방식이 18~19세기에는 드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초도호연에서도 주인공이 착용한 색동반비 안으로 분홍색의 좁은 소매가 보이는데, 다리 옆으로 같은 색의 긴 옷자락이 놓여 있어 이 분홍색 상의가 저고리가 아닌, 옆트임이 있는 협수장유(夾袖長襦) 형태인 소창의임을 유추 할 수 있다.

<Fig. 1>

Boy’s First Birthday Outfit in Modang Pyeongsaengdo 『Chodohoyeon』(Kim, n.d.-a)

<Fig. 2>

Drawing Patterns of Boy’s First Birthday Outfit(Kim, 2016, pp.72)

<Fig. 3>

Vest Wearing Style in 18C(Kim, n.d.-b)

<Fig. 4>

Vest Wearing Style in 18C(Kim, 1748)

<Fig. 5>

Vest Wearing Style in 19C(Seong, n.d.)

남자의 저고리는 주로 속옷의 역할을 하여 가장 안쪽에 받쳐 입었다(Lee, 2021). 이는 출토유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남오성(1642~1712), 의원군(1661~1722), 밀창군(1677~1746) 묘 습의가 단령, 심의, 대창의, 중치막, 소창의, 저고리(한삼, 적삼 등) 순으로 수습되어 해당시기의 남성복식 착용순서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남아 돌복을 입을 때에도 소창의 안에 저고리를 입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모당 평생도와 그 화본에서 돌쟁이 남아가 착용한 바지는 그 형태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본 연구에서는 위에 언급한 출토 유물을 토대로 어린이 복식은 성인의 것을 축소한 것과 같다는 점과 착용을 위한 실용성과 기능성을 살려 사폭바지로 하였다.

이와 같이 모당 평생도에 나타난 돌복 착용 모습과 18~19세기 회화, 출토복식 등을 토대로 본 연구에서는 색동반비, 소창의, 저고리, 바지를 18세기 남아 돌복 전통 콘텐츠의 범위로 복종을 한정하였다.


Ⅲ. 연구방법

1. 18세기 남아 돌복 전통복식 콘텐츠 개발 방향

18세기 남아복식의 형태와 제작방법, 소재 등을 직접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아동복식 출토유물은 매우 적은 편이다. 홍우협(1655~1691)(Kim, 1993), 탐릉군(1663~1731)(Hwang, 2023), 해평윤씨(17c 중후반 추정)(Park, 2002) 등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이 시기적으로 근접하여 참고 하였다. 다만 조선시대는 성인중심사회로, 아동복식은 대부분 성인의 의복을 축소한 것과 같은 형태임을 고려할 때(Ha, 2000), 18세기에 염습된 성인 남성복식 출토유물인 남오성(1642~1712), 의원군(1661~1722), 이태곤(1672~1763), 밀창군(1677~1746), 홍감보(1699~1763), 이익정(1699~1782)의 유물 등 또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남오성의 복식유물은 단령, 창의류, 한삼, 바지 등 총 50여점으로 복식의 종류는 다양하지 못하지만 출토 당시 미라가 함께 발굴되어 묘주의 키가 구체적으로 추정되었기 때문에 해당 시기 남자복식의 비율 및 착용 실루엣 등을 비교적 정확하게 참고할 수 있는 자료이다. 모당 평생도가 그려진 1781년과 염습시기가 가장 가까운 것은 이익정의 복식유물이며 단령, 도포, 창의류, 첩리, 저고리, 바지 등 총 59점이 출토되었다. 따라서 남오성과 이익정, 해평윤씨 남아의 복식유물을 중심으로 18세기 남아돌복의 특성을 연구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현대의 12개월 남아가 착용할 수 있는 돌복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하여 복식 유물을 토대로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치수를 도출하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9~12개월 남아의 평균 신장은 76.76cm이고(Korean Statistical Information Service [KOSIS], 2024), 질병관리본부에 의하면 12개월 남아 신장 백분위수 50번째 치수는 75.7cm이다(Korea Centers for Disease Control & Prevention [KCDC], 2017). 그리고 Hong et al.(2010)은 돌쟁이 저고리 참고치수로 신장 80cm를 제시하였다. 이를 고려하여 본 연구에서는 남아 돌복 제작을 위한 신장 치수를 80cm로 설정하여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Shin et al.(2012)은 후지이 방정식을 사용하여 15세기~19세기 한국 남성의 평균 신장을 161.1±5.6cm로 추정하였고, Pak(2011)은 분묘에서 발굴된 사람뼈를 토대로 조선시대 남성의 평균 키를 164.49cm로 추정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18세기 남성의 키를 164.5cm로 설정하여 164.5:80 비율로 남아 돌복 제작을 위한 필요 치수를 도출한다. 다만 남오성 190cm, 해평윤씨 남아 99.4cm 등 묘주의 키가 구체적으로 추정된 경우에는 이를 참고하였다. 이렇게 도출한 18세기 남아 돌복 콘텐츠의 제작을 위한 치수는 <Table 1>과 같다.

Measurements for the Production of 18th-century Boy’s First Birthday Outfit Contents

18세기 이전의 조선시대 여자저고리 길이는 대체로 완만한 단소화(短小化) 경향을 지니지만 18세기 말엽에 저고리 길이가 급격히 짧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Kim, 1985). 모당 평생도의 초도호연에서도 노년층에 속하는 유모와 나이 많은 여하인이 착용한 저고리는 길이가 길고 품이 넉넉한 것에 비해, 젊은 여성인 돌쟁이의 어머니와 여하인, 시비는 치마 말기가 보일 정도로 짧은 저고리를 착용한 모습이 확인된다. 이와 같은 실루엣의 변화는 남성 복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임진왜란 전까지는 남자바지가 여자 속곳과 같은 폭이 넓은 형태였으나 임진왜란 당시 넓고 커서 거추장스러웠던 복식에 대한 반성과 각성이 생겨 남자의 바지도 좁은 형태의 사폭형으로 변화하였다(Ku, 2002). 이에 18세기 후기에 염습된 남자바지 유물을 살펴보면 현대의 한복 바지에 비해 마루 길이가 짧고 바지통이 좁으며 양 배래선이 거의 직선을 이룰 정도로 벌어지는 특징을 보인다(Kim, 1993). 저고리 또한 현대의 남자저고리에 비해 품이 좁고 길이가 짧은 편이기에 18세기 남아 돌복 콘텐츠를 개발함에 있어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였다.

모당 평생도는 18세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회화의 변색 및 탈색 등으로 인해 정확한 색채 측정에 무리가 있으며, 이에 대해 Jo(2000)는 김홍도의 풍속화에서는 복색의 어둡고 밝음만을 알 수 있을 뿐 자세한 색의 구분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또한 그림에서 각 복식의 색채 면적이 너무 작기 때문에 실물작품에서의 측색도 어렵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모당 평생도를 실견하고,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정리한 한국전통표준색을 바탕으로 색명을 참고하였다. 모당 평생도 초도호연에서 주인공인 돌쟁이 남아는 분홍색 소창의 위에 선홍색, 담황색, 녹색, 포도색 색동이 달린 연두색 색동반비를 입고, 하의로는 백색 바지를 착용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본 연구의 목적은 현대에 활용성 높은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므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원단을 사용하였다.

18세기에 염습된 출토복식 가운데 밀창군 묘에서 출토된 소창의는 원화문초, 접류문초, 원용문초, 무문초 등 초 종류가 많이 사용되었지만 이는 드문 경우로, 대다수의 남자 반비, 소창의, 저고리, 바지는 주 직물로 제작되었으며 겉감은 안감보다 고운 세주를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비슷한 시기의 아동복식 출토유물인 홍우협 묘 출토 중치막과 해평윤씨 남아 중치막, 배냇저고리, 바지 모두 명주로 되어 있어(Kim, 1993; Park, 2002), 해당 시기 남자 복식의 소재는 노소를 막론하고 주가 많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말 『궁중발기』의 기록이나 유물에 따르면 왕실에서는 왕손복의 소재로 장원주, 수화주, 삼팔주, 화사주, 온주, 정주 등의 주 직물뿐만 아니라 갑사, 관사, 은조사, 생고사, 숙고사 등 문양이 있는 사 직물도 다양하게 쓰였다(Kim, 2021).

본 연구에서는 콘텐츠의 실질적 활용성을 높이고자, 접근성이 용이한 시중 구매 원단을 소재로 선정하였다. 출토유물에서는 아동복식일지라도 무늬가 없는 명주가 많이 사용되었지만 왕실에서는 아동복식에 무늬가 있는 화려한 견직물을 많이 사용한 점, 그리고 전통복식 콘텐츠 개발이라는 본 연구의 목적을 상기하여 작은 무늬가 반복되는 진주사와 숙고사를 사용하여 전통복식 콘텐츠로서 심미성을 높이고자 한다. 특히 반비는 조선시대 중후기에는 주, 단, 가죽 등의 고급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궁중발기』에 기록된 반비의 소재를 살펴보면 왕실과 최상류층에서는 반비의 소재로 사(紗) 종류를 애용한 것으로 보여(Lee, 2004: Lee, 2008), 본 연구에서는 숙고사, 순인, 갑사 등 여러 문양의 소재를 사용하여 색동반비로서의 화려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2. 19세기 남아 돌복의 복종별 특징

1) 색동반비

반비(半臂)는 반소매의 짧은 상의로(Lee, 2008),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흥덕왕 복식금제(834년)에 반비는 남녀 모두 착용하였으며, 표의 안에 입거나 내의 위에 입었던 의복이라는 기록이 있어 오랫동안 착용해 온 의복 형태임이 확인된다.

남오성 유물 중에는 반비가 없고, 이익정 유물 중에는 <Fig. 6>의 반수방령상의(半袖方領上衣)가 있지만 깃이 달린 전단후장형 반비로 그 형태가 모당 평생도의 색동반비와 매우 달라 치수를 참고하기에 무리가 있다. 이와 같이 색동반비의 콘텐츠를 개발함에 있어 직접적으로 치수를 참고할 만한 유물은 없지만, 현존하는 18세기 유물 중 국립 민속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반비의 형태가 이와 유사하다. <Fig. 7>의 해당 반비는 은진송씨 집안에서 기증한 것으로, 목둘레가 둥글고 깃 없이 합임 형태로 앞에서 고름으로 묶게 되어 있다. 풍속화와 유물에 근거하여 해당시기에 이와 같은 형태의 반비가 착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Fig. 6>

Half-Sleeved Jacket Excavated from the Tomb of Lee Ik-jung(Koh, 2001, p.127)

<Fig. 7>

Vest Donated by the Eunjin Song Family(18C)(Baeja [배자], n.d.)

따라서 색동반비는 안에 받쳐 입은 저고리와 소창의를 토대로 치수를 도출하고, 형태적인 부분은 모당 평생도의 화본과 은진송씨 기증 반비를 반영하고자 한다. 봉제 방법에 있어서는 의원군 묘에서 출토된 반수의 바느질법이 솔기방향, 올방향, 배래 등이 다른 옷과 다르지 않음이 밝혀져 이를 참고하였다(Kim, 2001).

초도호연에서 주인공이 착용하고 있는 색동반비는 목둘레가 둥글고 깃이 없으며 소매 끝에 네가지 색으로 색동이 달려 있다. 길은 연두색이고 색동은 진동부터 선홍색, 담황색, 녹색, 포도색 순으로 색동이 달려 있다. 색동옷에 대해서는 승려들이 자신의 자녀를 구별하기 위해 색동옷을 입혔다는 구전설화가 있지만 조선시대에 어린아이의 돌복으로 색동옷을 입힌 것은 아기가 잘 자라라는 소망과 수명장수(壽命長壽)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Chu, 2004). 김홍도가 초도호연에 색동옷을 그린 것을 통해 당시에 이미 이러한 풍습이 드물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색동반비의 소재나 문양은 그림상 확인하기 어렵지만 앞서 설정한 콘텐츠 개발 방향에 따라 숙고사, 순인, 갑사와 같은 다양한 문양의 견직물을 사용하도록 한다.

2) 소창의

창의류는 의복의 구성 가운데 옆트임 혹은 뒤트임이 있는 의복을 말하며, 소창의라는 명칭은 19세기 전반 정약용의 『다산시문집』에서 '협수장유'를 소창의라고 주석한 기록이 있다(Park, 2004). 소창의는 무가 없이 옆트임이 있고 소매가 좁은 착수이며 구성유형은 겹, 솜, 솜누비, 겹누비가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남오성 묘에서 출토된 소창의의 형태도 이와 같아서 총 15점 소창의 모두 겉깃은 칼깃, 안깃은 목판깃에 무가 없이 겨드랑이 아래가 길게 트여 있으며 소매는 착수이다. <Fig. 8>은 남오성 묘 출토 소창의 중 하나이다. 앞길과 뒷길을 한 장으로 마름질하여 어깨솔이 없고, 겉・안감의 배래와 옆선을 각각 바느질한 뒤 겉감에 안감을 끼워서 연결하였으며 겉감과 안감을 고정하기 위해 섶선단과 옆트임, 도련, 수구 가장자리 안쪽에 두 땀 상침 바느질을 하였다. 이러한 바느질 방법은 겉・안감을 각각 봉제하여 합친 두겹 봉제 방법이다. 고름은 15점의 소창의 중 대략 2/3 가량은 솔기가 위로 가도록 했으며 겉감과 같은 소재를 사용했다. 이 외에 등솔 시접은 오른쪽, 겉섶 시접은 섶쪽, 안섶 시접은 길 쪽으로 넘겼고, 겉섶선은 사선, 안섶선은 직선으로 놓았다(Choi, 2005). 남아 소창의 유물은 드물지만 해평윤씨 남아 묘의 중치막과 홍우협 묘의 남아 중치막도 이와 동일한 시접처리 및 봉제 방법이 확인되어, 남아 소창의도 이러한 방법으로 제작하고자 한다.

<Fig. 8>

Sochangui Excavated from the Tomb of Nam Oh-sung(Sochangui [소창의], n.d.)

모당 평생도의 초도호연에서 주인공은 색동반비 아래에 분홍색 소창의를 착용하고 있으며 소매끝에 백색과 녹색의 색동이 달려 있다. 『성호사설(星湖僿說)』에 고려 말 공민왕이 소년들을 뽑아 분홍색 옷을 입혔다는 기록이 있어, 분홍색 옷을 착용하는 풍습은 고려시대부터 이어 내려온 것임을 알 수 있다(Kim, 2011).

본 연구에서 개발하는 소창의는 어린이용이므로 큰 문양의 직물을 피하고 마름모꼴의 작은 문양이 반복되는 진주사를 사용하도록 한다.

3) 저고리

저고리는 남녀가 공통으로 착용한 상의였지만 기능상의 차이가 있었다. 여자 저고리는 표의로 착용되어 남자 저고리에 비해 화려하고 시기에 따른 디자인 변화도 눈에 띄지만, 남자는 실내에서도 편복포를 입었기 때문에 남자저고리는 속옷 역할로 착용되었다(Kim & Kang, 2003). 남자의 저고리는 목판깃에서 칼깃으로의 변화 외에는 큰 변화없이 조선 초부터 말기까지 그 형태가 유지된다.

남아 저고리 출토 유물은 대부분 1600년대 이전에 염습된 것으로, 해평윤씨 남아 묘에서 배냇저고리가 출토되었으나 깃이 고대 부분에만 좁게 달려 있고 섶이 없는 형태라 본 연구에서 참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Lee(2018)의 어린이 복식 유물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남자 어린이 저고리는 동시대 남자 저고리와 형태는 동일하고 크기의 차이만 보인다고 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18세기 남성 저고리 유물을 토대로 형태와 구성을 분석한다. 남오성 저고리 <Fig. 9>와 이익정 저고리 <Fig. 10>도 이와 같은 특징을 보인다. 겉깃은 칼깃, 안깃은 목판깃이며 소매는 진동에서 수구까지 조금씩 좁아지는 직선배래이다(Choi, 2005; Koh, 2001).

<Fig. 9>

Jeogori Excavated from the Tomb of Nam Ohsung(Jeoksam [적삼], n.d.)

<Fig. 10>

Jeogori Excavated from the Tomb of Lee Ikjung (Koh, 2001, p.128)

남오성 묘에서 출토된 저고리류는 한삼 1점뿐이다. 한삼은 속옷처럼 착용하던 홑저고리로, 조선 중기까지 겹저고리였던 적삼이 점차 홑옷화되어 한삼과 혼용되자 한삼은 소매끝 장식으로 비하된 것으로 보여진다(Park, 1994). 출토 유물의 보고서에서는 일반적으로 홑저고리류를 한삼, 적삼으로 분류하고 특히 홑저고리 중에 소매가 길게 달려있는 의복을 한삼으로 정의하였다(Kim & Kang, 2003). 남오성 한삼도 소매가 길고 옆트임이 있는 형태이고, 이익정 적삼도 옆트임이 있다. 18세기 남자 출토복식을 살펴보면 한삼이나 적삼과 같이 홑옷인 경우에는 11~13cm의 옆트임이 있고, 겹옷에는 대부분 옆트임이 없다.

남오성 한삼은 어깨선을 골로 하여 앞길과 뒷길로 한 장으로 마름질 되었고, 시기적으로 조금 뒤의 유물이나 홍희준(1761~1841) 묘에서 출토된 겹저고리도 어깨선이 골로 마름질되어 있어 18세기 남자 저고리는 조선 초기부터 전래되는 동일한 방법으로 바느질되었음을 알 수 있다(Park, 1994). 또한 소창의와 마찬가지로 저고리도 겉・안감 배래를 각각 바느질한 뒤 끼워서 합치는 두겹 바느질 방법을 사용했으며, 소매 배래는 시접을 정리하여 소매 뒤쪽으로 보냈다. 깃은 한 장을 골로 마름질하여 겹으로 달았다(Choi, 2005).

초도호연에서 주인공이 소창의 아래 착용한 저고리의 색상은 확인할 수 없지만, 바지 색상이 백색이므로 그와 같은 백색 저고리로 설정하였다. 18~19세기 조선 반가에서 색동저고리, 색동두루마기와 같은 색동옷이 상징적인 돌복의 형태로 여겨졌지만(Hong, 2022), 초도호연에 드러난 모습으로는 색동반비와 소매 끝에 색동이 달린 소창의 아래에 속옷처럼 저고리가 착용되었음을 고려할 때 저고리의 색상은 백색으로 설정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저고리의 소재는 소창의와 마찬가지로 작은 무늬가 반복되는 견직물인 진주사를 사용한다. 참고유물인 남오성 저고리와 이익정 저고리는 모두 홑으로 제작되었지만, 홑옷은 1세 유아가 착용하기에 시접이 불편할 수 있으므로 본 연구의 저고리는 겹저고리로 제작하고자 한다.

4) 바지

조선시대 남자 바지의 형태는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바지통과 부리가 넓고 트임이 있으며 허리에 주름이 잡혀 있는 속곳형의 바지였으나, 임진왜란 당시 넓고 큰 복식이 거추장스러워져서 복식이 신체에 적합한 형태로 바뀌며 바지도 좁은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Ku, 2002). 16세기 말에는 속곳형과 사폭형의 중간형태 바지가 발견되며 17세기 유물부터 사폭형의 바지가 발견된다.

남오성 묘에서는 겹바지 2점, 홑바지 1점의 사폭바지 총 3점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바지에서 모두 마루폭과 사폭선의 이음선 및 큰사폭과 작은사폭의 이음선이 거의 직각을 이루고 있으며 바지를 펼쳤을 때 <Fig. 11>과 같이 양쪽 배래선이 매우 큰 각도로 벌어지는 형태적 특징이 나타난다. 이는 당시 바지 형태의 특징이다(Kim, 1993).

<Fig. 11>

Pants Excavated from the Tomb of Nam Oh-sung(Pants [바지], n.d.)

또한 남오성 바지는 작은사폭이 오른쪽으로 오도록 되어 있어(Kim & Choi, 2004) 본 연구에서도 바지의 작은사폭을 오른쪽으로 두고 제작하였다. 다만 이러한 형태가 해당 시기에 보편적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17~18세기 유물에 관한 선행연구를 보면 배래 시접의 방향이나 허리 연결선의 위치 등을 기준으로 바지의 앞과 뒤를 구분할 경우, 작은사폭이 왼쪽인 형태와 작은사폭이 오른쪽인 형태가 모두 관찰되어(Hwang, 2023; Kim, 2001) 이에 대한 후속연구가 요구된다.

바느질 방법은 겉・안감 배래선을 각각 바느질한 뒤 끼워서 허리 부분과 부리 부분에서 연결하였다. 허리와 부리 부분에서 두 땀 상침하여 겉・안감을 서로 고정해 주었다. 시접의 처리방향은 큰사폭과 작은사폭의 이음선은 큰사폭쪽, 사폭과 마루의 이음선은 마루쪽으로, 허리와 바지통 시접은 위쪽으로 정리하였다(Choi, 2005).

초도호연에서 주인공은 분홍색 소창의 아래로 백색 바지를 착용하였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왕실에서는 삼칠일부터 10세까지 바지는 백색만이 착용되었고, 민가에서는 남아의 돌복으로 대개 보라색 풍차바지를 착용하여 왕실과 민가의 풍습이 달랐던 것으로 보이나(Kim, 2021; Park, 2000), 본 연구에서는 모당 평생도 초도호연에 표현된 대로 백색 바지로 설정하였다.

바지의 소재는 저고리와 같이 진주사를 사용하여 겹바지로 제작하고자 한다.


Ⅵ. 18세기 남아 돌복 전통복식 콘텐츠 실물 제작

1. 색동반비

18세기 염습된 출토 유물 중에는 모당 평생도에 표현된 색동반비는 형태가 유사한 18C 은진송씨의 반비를 반영하였고 봉제 방법은 의원군 유물 선행연구에서 밝혀진 반수의 바느질법을 참고하였다. 색동반비는 목둘레가 둥글고 깃이 없으며, 합임으로 앞중심선에서 여미게 되어 있다. 짧은 소매에는 네 줄의 색동이 달려있다.

봉제 방법으로는 의원군 유물 반수의를 토대로 뒷길의 솔기는 겉・안감 모두 입어서 오른쪽으로 가도록 하고, 소매와 옆선은 해당 시기의 바느질 방법과 같이 겉감과 안감을 각각 따로 봉제한 뒤 끼워서 만들었다. 반비의 여밈은 양쪽 길에 고름을 달아서 여미도록 하였으며, 고름의 크기와 위치는 은진송씨 반비를 참고하여 좁고 짧은 고름을 양쪽 길에 달았다.

색동반비는 모당 평생도에서 그 색상과 형태가 비교적 또렷이 묘사되었기 때문에 이를 많이 반영하였다. 색동반비의 길은 연두색, 색동은 선홍색, 담황색, 녹색, 포도색을 사용하였고, 아동복식으로서 밝은 이미지를 더하기 위해 안감은 황색을 사용하여 안감의 밝은색이 은은하게 겉감에 비치도록 하였다.

소재는 길은 숙고사로 제작하였으며 색동은 다양한 효과를 표현하기 위해서 선홍색 숙고사, 담황색 순인, 녹색 갑사, 포도색 숙고사를 사용하였고, 안감은 길 겉감과 동일하게 숙고사를 사용하였다. 이렇게 제작한 색동반비는 <Fig. 12>와 같다.

<Fig. 12>

Colorful Vest (Photographed by Researcher)

저고리와 소창의는 참고유물을 기반으로 상세한 치수를 도출했기에 이 위에 착용하는 반비는 소창의의 품, 진동, 고대보다 5~10mm씩 크게 하여 제작했다. 색동반비의 치수는 뒷길이 25cm, 화장 22.5cm, 진동 15cm, 고대 5.5cm이며 색동은 각각 1.5cm 나비로 하였다. 그 외의 상세한 치수는 <Fig. 13>과 같다.

<Fig. 13>

Diagram of Colorful Vest (Worked by Researcher)

2. 소창의

남오성 묘에서 출토된 소창의 15점 중 깃, 동정, 겉고름, 안고름 등이 소실되지 않은 소창의 1점을 주요 참고유물로 하였다. 18세기 소창의의 형태적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여 겉깃은 칼깃, 안깃은 목판깃으로 하였고, 무가 없이 길게 옆트임을 주었으며 소매는 진동부터 수구까지 완만하게 좁아지는 착수로 제작하였다.

길은 어깨선을 골로 하여 앞길과 뒷길을 한 장으로 마름질했으며 등솔의 시접은 겉・안감 모두 입어서 오른쪽으로 넘겼다. 겉섶선은 사선, 안섶선은 등솔선과 일치하는 직선으로 놓이며 겉섶 시접은 섶 쪽으로, 안섶 시접은 길 쪽으로 넘겼다. 고름은 솔기가 위로 가도록 하였다. 소매배래는 유물과 같이 겉감과 안감을 각각 바느질한 뒤 소매 뒤쪽으로 시접을 넘기고 징거서 정리하였다. 남오성 소창의 중 겹누비 혹은 솜누비의 경우 겉섶선과 도련, 트임에 별단을 댄 경우도 있지만, 겹옷은 섶선과 옆트임, 도련, 수구에 두 땀 상침으로 마무리하였기에 본 콘텐츠도 이와 같이 마무리하였다.

소창의 콘텐츠는 모당 평생도에 나타난 색상을 참고하여 소매와 길은 분홍색으로 하고 소매 끝의 색동은 백색과 녹색으로 하였다. 소재는 마름모꼴의 작은 꽃무늬가 반복되는 견직물인 진주사로 제작하였고 소매 끝에 색동은 백색과 녹색 숙고사를 사용하여 소재와 문양에 변화를 주었다. 제작된 소창의는 <Fig. 14>와 같다.

<Fig. 14>

Small Outer Robe (Photographed by Researcher)

남오성 미라의 키를 토대로 190:80의 비율로 도출한 남아 소창의 치수는 총길이 50.9cm, 화장 45.1cm, 진동 13.9cm이며, 고름은 폭 1.7cm, 길이 22.9cm/22cm이다. 다만 해당 비율로 축소하면 품이 11.4cm로 너무 작아 해평윤씨 중치막을 참고하여 14.5cm로 조정하였고, 고대는 저고리 고대 너비가 4.6cm임을 고려하여 4.2cm에서 5cm로 0.6cm 가량 늘렸다. 깃 나비도 저고리 깃 나비가 5.5cm이기에 이보다 넓게 만들기 위해, 190:80 비율로 도출한 5.5cm에서 7cm로 1.5cm 정도 조정하였다. 그 외에 상세한 치수는 <Fig. 15>와 같다.

<Fig. 15>

Diagram of Small Outer Robe (Worked by Researcher)

3. 저고리

남오성 저고리를 기준으로 190:80의 비율로 도출한 저고리 사이즈와 이익정 저고리를 기준으로 164.5:80의 비율로 도출한 저고리의 사이즈를 비교한 결과 품/4이 12.4cm로 동일하여 남오성 출토복식 중 유일한 저고리류인 한삼을 주요 참고유물로 하되, 아동복식에 맞게 치수를 조정함에 있어 이익정 저고리도 함께 참고하였다.

두 참고유물의 형태적 특징을 반영하여 저고리의 겉깃은 칼깃, 안깃은 목판깃으로 제작하였고, 소매는 진동에서 수구까지 살짝 좁아지는 직선배래로 하였다. 남오성, 이익정, 탐릉군, 의원군 등의 유물을 통해 살펴본 결과 속옷으로 착용한 남성 저고리에는 동정을 달지 않았음이 확인된다. 본 연구에서 제작하는 남아 저고리도 소창의 아래에 속옷의 개념으로 착용되고, 유아의 착용성을 고려해야 하므로 동정을 달지 않았다. 또한 출토유물에 따르면 겹옷에는 대부분 옆트임이 없었으나 본 연구에서는 착용한 유아의 활동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겹저고리임에도 한삼과 같이 옆트임을 주었다. 남오성 저고리는 품에 비해 소매가 긴 편이며, 이익정 묘에서 출토된 저고리도 수의용 적삼은 보공용 저고리 4점과 달리 소매가 길다. 다른 치수는 큰 차이가 없으나 소매만 긴 것은 현재도 수의용 속적삼은 시신의 손을 가리기 위해 길게 하는 관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Koh, 2001). 따라서 아동복식 콘텐츠로서 제작되는 남아 돌복의 저고리는 소매 길이를 유물보다 짧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저고리는 소창의와 같이 어깨선을 골로 하여 앞길과 뒷길을 한 장으로 마름질하였고, 겉・안감을 각각 만들어 끼워 넣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소매 배래의 시접은 뒤쪽으로 보냈고, 등솔은 오른쪽, 겉섶 시접은 섶쪽, 안섶 시접은 길쪽으로 보냈으며 고름은 시접이 위로 오도록 달아 시접을 정리하는 방향은 현대의 것과 동일하다. 깃은 남오성 저고리와 마찬가지로 한 장을 골로 마름질하여 겹으로 달았다.

제작된 저고리 콘텐츠는 백색 진주사를 사용하였으며 이는 <Fig. 16>과 같다.

<Fig. 16>

Jacket (Photographed by Researcher)

남오성 저고리와 이익정 저고리를 참고하여 도출한 남아 저고리의 치수는 총길이 28.2cm, 화장 42.1cm, 품 12.4cm, 고대 4.6cm, 진동 13.3cm이며, 그 외에 상세한 치수는 <Fig. 17>과 같다. 다만, 출토유물을 토대로 한 비율로 축소하면 깃 나비가 너무 넓어 유아가 착용하기에 불편할 수 있기에 깃 나비를 5.9cm에서 5.5cm로 조정하였다. 남오성과 이익정 묘에서 출토된 저고리는 모두 고름이 소실되어 그 치수를 알 수 없었는데, 탐릉군 묘에서 출토된 겹저고리의 긴 고름이 남아 있어 이를 164.5:80의 비율로 도출하여 고름의 폭은 1.5cm, 길이는 22.9cm/20cm로 제작하였다.

<Fig. 17>

Diagram of Jacket (Worked by Researcher)

4. 바지

남오성 묘에서는 겹바지 2점, 홑바지 1점 총 3점의 사폭바지가 출토되었다. 그중 허리띠와 대님이 소실되지 않은 겹바지 1점을 참고유물로 하여 190:80의 비율로 치수를 도출하였다. 바지의 형태는 큰사폭과 작은사폭의 이음선이 거의 직각을 이루도록 하고, 양쪽 배래선이 매우 큰 각도로 벌어지게 하여 남오성 바지를 비롯한 해당 시기 바지형태의 특징을 반영하였다. 작은사폭의 방향은 18세기 바지의 일반적인 형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참고유물인 남오성 바지와 같이 작은사폭이 오른쪽으로 오도록 하였다.

남오성의 바지는 3점 모두 동일한 바느질 방법으로 제작되어 이를 제작 과정에 반영하였다. 현대와는 달리 배래 부분을 네겹 바느질로 하지 않고, 겉・안감을 각각 배래를 봉제한 뒤 부리를 연결했기 때문에 배래선이 따로 떨어져 있다. 따라서 허리와 부리 부분에는 두 땀 상침하여 겉・안감을 고정하였다. 시접 처리 방향은 남오성 바지와 같이 큰사폭과 작은사폭 연결 부분은 큰사폭쪽으로, 사폭과 마루폭 연결 부분은 마루폭 쪽으로, 허리와 바지통 연결 부분은 위쪽으로 시접을 꺾었다.

바지의 색은 모당 평생도 초도호연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백색으로 하였으며, 소재는 저고리와 같은 진주사를 사용하였다. 제작된 바지는 <Fig. 18>과 같다.

<Fig. 18>

Pants (Photographed by Researcher)

190:80의 비율로 도출된 남아 바지의 치수는 총길이 52.6cm, 마루길이 42.9cm, 마루폭 10.1cm, 허리둘레 55.6cm, 부리 13.9cm이다. 허리끈은 나비 3.4cm, 길이 70.7cm이고 대님은 나비 1.7cm, 길이는 발목에 한 바퀴 감아 묶을 수 있도록 45cm로 조정하였으며, 그 외에 상세 치수는 <Fig. 19>과 같다.

<Fig. 19>

Diagram of Pants (Worked by Researcher)

<Table 2>에 본 연구에서 개발 및 제작된 18세기 후기 남아 돌복 전통 콘텐츠를 정리하였다.

Boy’s First Birthday Outfit Traditional Contents in Late 18th-Century


Ⅴ. 결론

본 연구는 18세기 조선 후기의 풍속화를 기반으로 전통복식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김홍도 모당 홍이상 평생도 중 초도호연을 토대로 남아 돌복을 제작하였다. 전통문화산업진흥법 시행과 함께 전통문화상품의 개발이 활성화되는 시점에서 단순한 시각적 구현을 넘어 출토복식과 선행연구를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보다 정밀하게 전통복식 콘텐츠를 개발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내용과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8세기 김홍도 평생도 작품 중 돌잔치 장면에 등장하는 1세 남아 돌복 연구를 위해 문헌연구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풍속화 실견 분석을 병행하였다. 사실주의적 표현기법의 김홍도 회화자료의 분석과 선행된 Kim(2016)의 평생도 복식의 화본 연구, 남오성, 이익정, 해평윤씨 남아 유물 등 18세기 아동과 성인 남성의 출토복식을 배경으로 하여 평생도 돌복의 복종 근거를 보완하였다. 평생도의 돌쟁이는 반비와 소창의를 착용하였는데, 안쪽에 입은 복식의 종류도 문헌연구를 토대로 유추하여 속저고리, 바지로 복종을 한정하여 연구범위로 하였다. 기존에 전통복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남아돌복은 『궁중발기』에 기록된 19세기 궁중복식의 형태지만, 본고에서는 색동반비와 소창의, 저고리, 바지를 전통아이템으로 제시하였다.

둘째, 4종류의 복식 제작을 위하여 고문헌, 선행연구, 출토복식 보고서, 풍속화 연구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복식 콘텐츠화 할 수 있도록 치수, 색상, 소재, 착의 방식을 한정하였다. 치수는 조선시대 남성과 현대 1세 어린이의 평균 신장을 비율로 설정하여, 제작에 필요한 각 치수를 도출하였다. 복색은 풍속화를 실견하여 한국전통표준색의 색명을 참고하여 정하였으며, 소재는 어린이용에 적합한 작은 반복무늬의 사(紗)종류로 하였다. 회화작품에서는 단색으로만 표현되어 문양이나 소재를 유추할 수 있는 표현이 부족하였다. 그러므로 사료에 근거한 색과, 소재를 고찰하였으나,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는 구입이 용이한 실크소재 전통문양 중 어린이 복식에 적합한 작은 문양의 진주사, 숙고사, 순인 등을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착의방식은 18세기의 저고리, 바지, 소창의 위에 반비를 입는 순서로 하여 돌복을 한정하였다.

셋째, 이러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1세 남아 돌복의 실물을 제작하였다. 18세기의 구성방식 및 봉제방법을 실현하여 18세기 복식에 가까운 형태로 제작하고자 하였다. 출토복식 등을 토대로 18세기 봉제방식에 따라 저고리, 소창의, 바지의 봉제방법으로 겉・안감을 각각 봉제한 뒤 겉・안감의 겉과 겉을 마주하여 끼워서 두 겹 박기 한 후 뒤집어서 완성하며, 겉에서 상침 하는 방식으로 봉제하였다. 조선시대 남자저고리는 속옷과 같이 착용되었음을 참조하여 본 연구의 저고리에는 동정을 달지 않았으며, 출토 한삼에 근거하여 소매통을 좁고 길게 하였다. 바지는 당시 바지의 특징을 수용하여 양쪽 배래선이 매우 넓은 각도로 벌어지면서 길이가 짧은 형태로 제작하였다. 또한 18세기 후기에는 남자바지의 사폭 방향이 다양했으므로 작은사폭이 오른쪽으로 오게 제작하였다. 반비는 은진송씨, 의원군 출토 반수의의 바느질 방법과 형태가 동일함을 반영하여 4줄의 색동을 연결하고 깃 없는 둥근 네크라인 형태로 제작하여 평생도 속 돌복의 형태를 구현하였다.

본 연구는 풍속화를 사료적 근거로 활용하여 전통복식을 연구함으로써 복식사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였다. 또한 현대적인 전통복식 콘텐츠 개발을 위한 과정을 제공하여, 전통문화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가능성을 제시한 것에 그 의의가 있겠다.

그러나 본 연구 과정에서 활용된 평생도는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으나 회화 특유의 표현적 왜곡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과 단면으로 표현된 회화 속 소재와 문양, 색 재현의 부분에 있어 한계가 있다. 본고는 남아 돌복의 핵심 착의 요소에 집중하여 연구되었다. 전통색과 소재재현, 돌띠와 굴레, 신발 등의 세부요소는 향후 과제로 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한국한복진흥원의 지원으로 연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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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

<Fig. 1>
Boy’s First Birthday Outfit in Modang Pyeongsaengdo 『Chodohoyeon』(Kim, n.d.-a)

<Fig. 2>

<Fig. 2>
Drawing Patterns of Boy’s First Birthday Outfit(Kim, 2016, pp.72)

<Fig. 3>

<Fig. 3>
Vest Wearing Style in 18C(Kim, n.d.-b)

<Fig. 4>

<Fig. 4>
Vest Wearing Style in 18C(Kim, 1748)

<Fig. 5>

<Fig. 5>
Vest Wearing Style in 19C(Seong, n.d.)

<Fig. 6>

<Fig. 6>
Half-Sleeved Jacket Excavated from the Tomb of Lee Ik-jung(Koh, 2001, p.127)

<Fig. 7>

<Fig. 7>
Vest Donated by the Eunjin Song Family(18C)(Baeja [배자], n.d.)

<Fig. 8>

<Fig. 8>
Sochangui Excavated from the Tomb of Nam Oh-sung(Sochangui [소창의], n.d.)

<Fig. 9>

<Fig. 9>
Jeogori Excavated from the Tomb of Nam Ohsung(Jeoksam [적삼], n.d.)

<Fig. 10>

<Fig. 10>
Jeogori Excavated from the Tomb of Lee Ikjung (Koh, 2001, p.128)

<Fig. 11>

<Fig. 11>
Pants Excavated from the Tomb of Nam Oh-sung(Pants [바지], n.d.)

<Fig. 12>

<Fig. 12>
Colorful Vest (Photographed by Researcher)

<Fig. 13>

<Fig. 13>
Diagram of Colorful Vest (Worked by Researcher)

<Fig. 14>

<Fig. 14>
Small Outer Robe (Photographed by Researcher)

<Fig. 15>

<Fig. 15>
Diagram of Small Outer Robe (Worked by Researcher)

<Fig. 16>

<Fig. 16>
Jacket (Photographed by Researcher)

<Fig. 17>

<Fig. 17>
Diagram of Jacket (Worked by Researcher)

<Fig. 18>

<Fig. 18>
Pants (Photographed by Researcher)

<Fig. 19>

<Fig. 19>
Diagram of Pants (Worked by Researcher)

<Table 1>

Measurements for the Production of 18th-century Boy’s First Birthday Outfit Contents

Tops Bottoms
Category Vest (Banbi) Small Outer Robe
(Sochangui)
Jacket
(Jeogori)
Category Pants (Baji)
Chest/4 15.1 14.5 12.4 Waistband/2 27.8
Length 25 50.9 28.2 Length 52.6
Hwanjang 22.5 45.1 42.1 Waist Width 9.7
Armhole 15 13.9 13.3 Hem Width/2 13.9
Collar/2 5.5 5 4.6 Maru Length 42.9
Sleeve Width   10.5 10 Maru Width 10.1
Collar Width   7 5.5 Big Sapok Width 20.2
Long Goruem Lenght   32.6 22.9 Small Sapok Width 15.6
Short Goruem Length   30.3 20 Waist Belt Length 70.7
Goruem Width   2.0 1.5 Waist Belt Width 3.4
Side Slit   29.1 4.6    

<Table 2>

Boy’s First Birthday Outfit Traditional Contents in Late 18th-Century

Item Drawing Material Size(cm) Diagram Picture
Colorful
vest
Sukgosa
Sunin
Gapsa
Hwajang 22.5
Length 25
Bust/4 15.1
Small outer
robe
Jinjusa
Sukgosa
Hwajang 45.1
Length 50.9
Bust/4 14.5
Jacket Jinjusa Hwajang 42.1
Length 28.2
Bust/4 12.4
Pants Jinjusa Length 52.6
Width 30.3
Hem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