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 정치 시대, 패션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 공감 정치를 위한 패션 커뮤니케이션 연구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political functions of fashion in the context of affective politics. It focuses, on how fashion operates as a communicative medium that shapes political meaning, constructs identity, and influences public perception in contemporary media environments. As modern politics shifts from policy-centered discourse toward image-based and emotion-driven communication, fashion has become an important mechanism through which political messages are produced, circulated and interpreted. Using qualitative content analysis, this study examines 91 articles on fashion and politics published in The New York Times between July 2024 and July 2025. It analyzes textual and visual materials to identify recurring patterns in the use of fashion in political representation and public discourse. The findings indicates that fashion has evolved from a symbol of power in premodern societies into a central language of affective politics in the digital era. Five major functions are identified in contemporary media politics: legitimating power visually, constructing political identity performatively, shaping public opinion affectively, visualizing collective identity and solidarity, and enabling moral evaluations of authenticity. These functions work by condensing political meanings into visual symbols, eliciting emotional responses, and stabilizing identity through repetition. In doing so, fashion influences, collective perception and public opinion. Based on these findings, the study argues that fashion communication can contribute to empathic politics by fostering connection, strengthening trust through consistency, and expanding inclusivity across diverse social identities.
Keywords:
affective politics, empathic politics, fashion and politics, fashion communication, political communication, The New York Times키워드:
감성 정치, 공감 정치, 패션과 정치, 패션 커뮤니케이션, 정치 커뮤니케이션, 뉴욕타임스Ⅰ. 서론
1. 연구 목적
패션은 오랜 역사 속에서 권력의 형성에 기여해왔다. 현대 정치는 말의 무게보다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평가되고, 대중 역시 후보자의 정책보다 표정이나 패션에 주목하는 경향을 보인다. 16세기 피렌체의 외교관이었던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는 이미 『군주론(Il Principe)』 에서 정치권력은 도덕성이나 내면적 덕목보다, 외양과 연출을 통해 인식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즉, 사람들은 사물의 본질보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결과를 통해 판단하기 때문에, 군주는 실제로는 그러하지 않더라도 자비롭고, 신의가 있으며, 신앙심 깊은 존재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Machiavelli, 1532/2020).
2025년 2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Володимир Зеленський)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 군복 스타일의 검은 카고바지와 전투화 차림으로 참석했는데, 이는 전쟁 지도자로서 국민과의 연대를 상징하려는 복장이었지만 외교 현장에서는 오히려 긴장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보수성향 기자들은 정장을 가지고 있긴 하냐며 공개적으로 조롱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불쾌감을 드러내어 회담장은 냉랭한 분위기로 급변했으며, 공개적 비판 속에 회담은 파국적으로 종료되었다(Holland et al., 2025). 이처럼 정치 영역에서 패션은 외교적 메시지를 표현하는 언어로 작동하며, 정치적 관계를 강화하거나 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요소이다. 한편, 패션 브랜드에 대한 취향은 정치적 성향을 판단하는 데이터로 활용되기도 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캠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는 페이스북 사용자 약 5천만 명의 의류 브랜드 선호도와 소비 패턴을 분석하여 정치 성향을 예측하는 지표로 활용하였다. 미국의 서부 개척지 신화를 바탕으로 한 랭글러(Wrangler)와 엘엘빈(L.L.Bean) 같은 전통적인 브랜드는 공화당 우파의 서사와 일치하여,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선호 브랜드로 분류하고, 겐조(Kenzo)와 같은 실험적인 브랜드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진보 성향 유권자로 분류하여, 각각에 맞춤형 정치 메시지로 홍보한 것이다(Friedman & Bromwich, 2018).
21세기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정치는 점점 더 감성 중심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패션은 그 주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포탄이 폭발하며 기병대를 산산이 날려버리는 장면 속에서 형성되는 패턴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던 미래주의자들을 언급하며, 정치의 미학화(Aestheticization of Politics)를 파시즘적 성향을 지닌 것으로 규정했는데, 정치적 행위가 그 효과가 아니라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평가될 때, 이는 인간성보다 스타일을, 고통보다 효과를 우위에 두는 위험한 가치 전도를 낳는다고 하였다(Wilson, 2003). 기존의 패션과 정치 관련 연구는 주로 여성 정치인의 사례를 중심으로, 패션을 정치적 이미지 형성과 메시지 전달을 위한 전략으로 보고, 색채, 스타일, 외교적 상황에 따른 복식 연출 등 시각적 요소의 해석에 주목해 왔다(Kim & Jang, 2017; Lee, 2012; Shin & Kim, 2016). 본 연구는 기존 논의를 확장하여, 패션을 감성 정치 시대의 소통 매개로 보고, 그 사회적 기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최근, SNS와 디지털 플랫폼 중심의 정치 환경이 강화되면서 정치적 메시지가 이미지와 감정 중심으로 소비되고, 패션이 전쟁, 기후 위기, 포용성 등의 이슈를 전달하는 장치로 부상하고 있는 변화는 본 연구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구체적인 연구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패션의 정치적 기능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분석한다. 둘째, 현대 미디어 정치 환경에서 패션이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을 규명한다. 셋째, 이를 바탕으로 공감 정치 실현을 위한 패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도출한다. 연구 결과는 학문적으로는 패션과 감성 정치 논의를 연결하는 새로운 분석 틀을 제시하고, 실무적으로는 정치 커뮤니케이션, 캠페인, 문화외교 등에서 패션을 보다 책임 있고 포용적인 소통 자원으로 활용하는 데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2. 연구 방법
본 연구는 현대 정치 분야에서 패션의 영향력과 활용 양상을 규명하기 위해 질적 연구 방법을 중심으로 수행되었으며, 문헌 연구와 내용분석을 병행하였다.
첫째, 정치와 패션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왔고, 패션의 정치적 기능이 어떠한 양상으로 진화해 왔는지 고찰하기 위해 복식사, 정치, 패션과 권력에 관한 국내외 학술 논문, 선행연구와 전문 서적을 검토하여 초기 분석 틀을 구성하였다.
둘째, 현대 미디어 정치 환경에서 패션이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을 규명하기 위해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기사에 대한 질적 내용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정치인의 이미지 전략이 선거와 여론 형성에 크게 작동해 온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분석 대상은 1851년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 신문이자, 2025년 기준 미국 신문 가운데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1918년 이후 총 135회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뉴욕타임스로 설정하였다(“The New York Times”, n.d.). 뉴욕타임즈는 미국 사회의 대표적 공론장 매체이자, 패션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분석하는 학술 자료로도 지속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이러한 점에서 뉴욕타임즈는 공적 영향력과 신뢰성을 갖춘 대표적 미디어이자, 패션과 정치가 교차하는 지점을 분석하는데 적합한 자료라 판단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2024년 7월부터 2025년 7월까지 ‘Fashion & Politics’를 키워드로 검색하여, 관련도 순으로 제시된 상위 91편의 기사를 대상으로 텍스트와 이미지 자료를 수집하였다. 분석 단위는 개별 기사 1편이며, 각 기사에 포함된 본문과 이미지 설명을 함께 검토하였다. 본 연구의 자료 수집, 선정, 코딩, 범주화 및 해석은 동일한 분석 기준에 따라 전 자료를 일관되게 검토하는 단일 연구자 중심의 질적 내용분석으로 설계되었다. 코딩은 먼저 문헌 연구를 통해 패션의 정치적 기능과 관련된 핵심 논점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권력, 정체성, 감정, 집단, 윤리의 다섯 차원을 초기 분석 축으로 설정하여 시작했다. 이후 뉴욕타임즈 기사 91편의 본문과 이미지 설명을 반복적으로 검토하며, 각 기사에서 패션이 수행하는 정치적 기능을 중심으로 1차 코딩을 실시하였다. 하나의 기사에서 둘 이상의 기능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복수 코딩 방식을 적용하였으며, 유사한 의미를 지닌 하위 코드를 통합하고 범주 정의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분석 틀을 정교화하였다.
현대 미디어 정치 환경에서 패션이 수행하는 정치적 기능은 다음과 같다<Table 1>.

Functional Classification of Fashion in The NYT ‘Fashion & Politics’ Articles(N=91, Multiple Coding)
패션 디자인의 정치적 발언 유형은 메시지를 발신하는 주체에 따라 구분될 수 있는데, 하나는 권력 집단이 디자인을 활용하여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거나 정치 이념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계몽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디자이너 집단이 당대 권력에 대한 지지 또는 입장 표명을 디자인을 통해 능동적으로 하는 경우이다(Ko, 2012). 본 연구는, 권력 집단이 패션을 통해 정치적 의미를 구성하고 전달하는 사례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Ⅱ. 이론적 배경
1. 감성 정치와 패션 정치의 개념
감성은 단순히 개인적 정서에 그치지 않고, 인식 형성과 사회적 관계 맺기, 나아가 권력의 작동 방식에까지 깊이 관여한다. 『Oxford Dictionary』에 따르면 ‘affect’는 중세에는 인간의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방식, 즉 성향, 의지 등 정신 상태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철학 분야에서는 반성 이전의 정서적 반응을, 현대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는 사고나 행동에 수반되거나 자극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느낌, 정서 그리고 그 외현적 표현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affect”, n.d.). 따라서 감성은 단순히 개인이 느끼는 기분인 감정이 아니라, 내면의 정서 상태와 그것의 표현 양식을 함께 가리키는 보다 넓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는 억압된 에로스적 감성에서 해방의 가능성을 보았고,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는 감성이 아름다움과 사랑뿐 아니라 위험, 금기, 고통과도 결부된 양가적 성격을 지닌다고 보았다. 또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감정과 욕망도 권력에 의해 길들여 질 수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감성이 해방의 가능성이면서 동시에 권력의 작동 방식과 연결된 장이라고 설명하였다(Lee, 2005).
일반적으로, 정치적 판단은 이성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좋은 정치적 결정은 비이성적 욕망을 없앨 수 있는 신중한 논증과 고심의 결과여야 하며, 감정은 이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여겨진다(Thrift & Amin, 2013). 그러나 감성 정치의 관점은, 인간을 단지 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 욕망, 충동, 신체적 반응 속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과 행동, 가치를 만들어 내는 존재로 이해하며, 정치 역시 주어진 질서 안에서 합의를 도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삶의 방식과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열어 가는 창조적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Aryal, 2011). 정치를 이성이 아닌 감정의 경쟁으로 보는 드루 웨스튼(Drew Westen)의 저서 『The Political Brain: The Role of Emotion in Deciding the Fate of the Nation』에서도, 유권자들은 먼저 정당이나 원칙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고려하고, 그다음은 후보자에 대한 감정, 마지막으로 정책의 입장을 기준으로 투표한다고 하였다(Westen, 2007). 즉, ‘감성 정치(Affective Politics)’는 정치를 고정된 질서에 대한 적응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조직해 가는 과정으로 보는 개념이다(Aryal, 2011).
한편, 박영실(2024)은 정치인이 패션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현상을 ‘패션 정치(Fashion Politics)’라고 언급하며, 정치인의 패션이 갖는 의미를 세 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 패션은 전문성과 신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단정하고 정교한 복장은 정치인의 책임감과 권위를 표현한다. 둘째, 패션은 대중과의 거리감을 줄이고 친근함을 형성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으며, 캐주얼한 의상은 정치인이 시민과 소통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강화한다. 셋째, 패션은 색상이나 디자인 등을 통해 정치적 가치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 수단이 된다(Park, 2024). 이처럼 정치인의 패션은 대중의 신뢰를 형성하고 정치적 이미지를 구축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략적 소통이다. 이에 본 연구는 패션이 정치에 미치는 기능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감 정치 실현을 위한 패션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을 도출하고자 한다.
2. 패션의 정치적 기능 변화
전근대 사회에서 패션은 정치권력을 신성화하는 시각적 장치였다. 기원전의 이집트에서도 이미 왕의 복식은 신분 질서와 통치 권력을 직접적으로 가시화하는 장치였다. 태양신(Ra)의 아들인 왕 파라오(Pharaoh)는 신과 인간 세상을 연결하며 죽어서도 불멸의 미라로 남았는데(Kim et al., 2010),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왕의 황금 가면은 우레우스로 장식된 네메스 두건과 의장용 턱수염을 갖춘 화려한 형태를 보여준다<Fig. 1>.
13~14세기 초반에 동서양 모두에서 의복의 선택은 지위에 따라 제한되었고, 패션도 위계적 사회에 나타난 변화에 대한 저항 때문에 억제되어 있었다(Entwistle, 2000/2013). 중세 사회에서 문장(Armorial Bearings)은 권력과 부를 지닌 자의 지배를 상징하는 표식이자, 가문이나 집단 그리고 국가의 권위를 나타내는 정치적 표시였다(Park, 2010). 체계적이면서도 강렬한 조형성으로 민중과 기사 모두에게 명확하게 인지되어, 충성과 정치적 의무를 각인시켰다. 문장의 도상은 주로 용맹한 동물이나 꽃문양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영토 확장이나 왕실 간 혼인 등 정치적 변동이 발생할 때마다 변화하였다(Park, 2010).
중세 후반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유럽의 권력은 점차 왕실과 궁정으로 집중되었는데, 궁정사회에서는 몸을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정교하고 풍성한 복식의 규모와 장식으로 권위를 과시하였다(Entwistle, 2000/2013).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문맹률이 높았기 때문에, 교회와 국가는 아이콘, 그림, 복장 등의 시각적 요소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였고, 14세기부터 널리 퍼진 재단 기술은 착용자를 초인적인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Ford, 2021).
특히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엘리자베스(Elizabeth) 1세 여왕은 화려하고 과장된 궁정 복식을 통해 자신을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라 신성한 권위를 지닌 존재로 연출하였다<Fig. 2>. 그녀의 복식은 가발과 거대한 러프(ruff)칼라, 진주, 보석과 자수로 장식된 의복과 파팅게일(farthingale) 스커트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특히 러프 칼라는 목 주변을 거대한 원형으로 둘러싸는 구조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군주의 신체를 실제보다 크게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지녔다(Lee, 2018).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을 ‘처녀 여왕(Virgin Queen)’으로 전략화하여, 결혼을 통한 권력 분할을 피하고, 국가와 동일시되는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더 나아가 ‘육체적으로는 여성이나 정치적으로는 남성’이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여성 군주라는 정치적 논쟁을 완화하고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도 했다(Rall, 2021). 엘리자베스 1세의 복식은 극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유지된 이미지 관리의 결과였으며, 약 3,000벌의 의상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패션이 권력 수행의 핵심 도구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Lee, 2018).
17세기는 30년 전쟁을 비롯한 정치적·종교적 갈등이 심화된 격변의 시기로, 유럽 각국의 권력 구조가 재편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프랑스의 루이 14세(Louis XIV)는 베르사유 궁정을 중심으로 패션을 국가 권력과 산업 전략의 핵심 요소로 활용하였는데, 이는 복식의 측면에서뿐 아니라 웅대한 궁전의 건축과 실내장식에서도 드러났다(Entwistle, 2000/2013). 루이 14세는 자신을 ‘태양왕(Sun King)’으로 상징화하며 의복과 궁정 의례를 통해 절대 권력을 연출하였다. 대형 가발, 레이스, 금 장식 등은 군주의 위엄을 강조하는 장치였으며, 특히 빨간 굽 하이힐인 ‘탈롱 루주(Talon Rouge)’는 왕권을 상징하는 대표적 정치적 복식 요소였다<Fig. 3>. 원래 하이힐은 페르시아 기병의 실용적 신발에서 유래하였으나, 17세기 유럽에서는 귀족의 신분과 부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변모하였다(Ford, 2021). 이처럼 루이 14세의 궁정 패션은 권력을 과잉적으로 가시화함으로써 지배 질서를 신성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정치적 전략이었다.
계몽주의의 확산과 함께, 18세기와 19세기에는 사치스러움이 더 이상 높은 지위의 상징이 아니게 되었고, 의복은 근면과 절제 같은 근대적 가치의 표현 수단으로 전환되었으며, 절제되고 편안한 우아함이 새로운 사회적 이상으로 자리 잡았다(Ford, 2021). 이는 16세기 초,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Baldassare Castiglione)가 『Il Cortegiano(궁정인)』에서 제시한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즉 노력의 흔적을 드러내지 않는 자연스러움라는 개념과도 연결되며, 근대 엘리트의 새로운 미적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18세기 이후, 도시의 성장과 부르주아 계층의 부상 그리고 산업혁명의 진전은 패션의 중심을 궁정에서 도시 사회로 이동시켰다. 대량생산과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기존의 사치 중심 복식만으로는 계층을 구분하기 어려워졌고, 복식은 점차 ‘형태’보다 ‘규범’과 ‘취향’의 영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Entwistle, 2000/2013). 이러한 변화는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더욱 급진화되기 시작했는데, 혁명은 신분 질서를 구분하던 복식 체계를 해체하고, 외형적 차이를 중화시키는 의상 혁명을 동반하였다(Park, 2010). 귀족의 상징이었던 퀼로트(Culottes)를 거부하고 등장한 여유 있는 실루엣의 서민적인 바지 상퀼로트(Sans-culottes)는 평등과 저항의 정치적 상징이었다<Fig. 4>.
한편 기계생산의 발전은 기성복의 확산과 패션의 민주화를 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남성복식 포기(Great Masculine Renunciation)’현상이 나타났는데, 남성 복식이 소박하고 단순한 수트(suit)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이는 정치적 합리성과 시민적 정체성을 상징했다(Ford, 2021). 남성 복식의 전환을 주도한 주체는 댄디(dandy)였는데, 댄디즘은 절제된 스타일과 완벽한 디테일을 통해 ‘계산된 단순함’을 추구하였으며, 이는 새로운 형태의 지위 경쟁을 만들어 냈다(Wilson, 2003). 댄디들은 의복의 단순성에서 비롯된 우아함을 핵심 가치로 삼았고, 절제된 스타일과 완벽한 디테일을 통해, 장식과 색채 중심 의복에서 재단과 핏(fit) 중심의 의복으로 새로운 유행 체계를 형성하였다(Wilson, 2003). 이처럼 근대 시민사회에서 복식은 제도와 법에 기반한 대표성의 수행을 구현하는 정치적 매체로 전환되었다.
20세기 대중 매체의 발달은 정치와 패션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정치에서 이미지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한 조 맥기니스(Joe McGinniss)의 선구적 저서 『Selling the President』에 따르면, 특히 텔레비전 정치의 등장은 정치인의 외모, 표정, 복식을 여론 형성의 핵심 변수로 부상시켰다(McGinniss, 1969). 이에 따라 과거의 엄숙하고 이념 중심적이었던 선전 방식은 소통과 감성적 유혹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대체되었고, 정치인은 사생활 공개, 예능 프로그램 출연, 편안한 복장, 악기 연주 등을 통해 친근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구축하게 되었다(Lipovetsky, 1994). 1960년 미국 대선 TV 토론에서는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보다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한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가 대중의 호감을 얻으며 정치 이미지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패배를 경험한 닉슨은 이후 새로운 이미지 전략으로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짙은 남색 수트와 은색 넥타이, 흰 셔츠의 조합을 통해 안정적이고 권위적인 인상을 연출하였다. 또한 조명과 카메라 필터를 조정해 따뜻한 화면 색조를 구현하고, 손동작, 미소, 시선 처리까지 훈련함으로써 정치가 점차 시각적 퍼포먼스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Lipovetsky, 1994).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텔레비전 시대의 정치는 정책과 이념이 아니라 ‘통합된 이미지(integral image)’가 선거의 핵심이 되었다고 언급하였는데, 이처럼 텔레비전 시대의 정치인은 연설하는 존재가 아니라 친밀한 대화를 수행하는 존재로 변화하였으며, ‘계산된 태연함’이 주요 정치 기술로 자리 잡았다(McGinniss, 1969).
패션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가시화하기도 한다. 전후 세계에서 이미지는 대중의 감정과 인식을 조직하는 강력한 정치적 도구로 작동했으며, 패션은 이러한 이미지 정치의 핵심 매개로 기능하였다(Bartlett, 2019). 동시에 국가와 지도자의 이미지도 기업 브랜드처럼 관리되며, 의복은 권력과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정치적 도구로 기능한다(Rall, 2021).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와 체 게바라(Che Guevara)는 군복과 수염, 베레모와 같은 복식을 통해 혁명가의 이미지를 구축했고, 특히 쿠바 사진가 알베르토 코르다(Alberto Korda)의 체 게바라 사진은 그를 전 세계 청년 문화 속의 낭만적 혁명가로 신화화하며,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Fig. 5>. 또한 마오쩌둥(Mao Zedong)은 차이나 칼라의 ‘마오 수트’를 통해 계급과 성별을 초월한 사회주의적 평등을 상징화하였는데, 이는 서구 사회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재해석되었다. 1960년대 서구의 반문화 운동 속에서 마오 수트는 반자본주의와 반식민주의를 상징하는 패션으로 수용되었으며, 특히 프랑스 학생운동에서 급진적 정치 정체성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확산되었다(Bartlett, 2019).
여성 정치인의 패션은 권력과 젠더 규범 속에서 복잡한 의미를 형성한다. 역할 적합성 이론(Role Congruity Theory)에 따르면 리더십은 남성적 특성과 결합하여 인식되기 때문에 여성 정치인은 권위를 확보하는데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고, 남성적 권위와 여성적 정체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이중적 요구에 직면한다(Rall, 2021).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의 팬츠 수트,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의 테일러드 수트와 진주 목걸이, 테레사 메이(Theresa May)의 키튼 힐 전략 모두 ‘관리된 여성성’을 통해 권력을 수행한 사례인데, 이들은 남성적 권위의 상징인 정장을 차용하면서도 색채, 액세서리, 실루엣 등을 통해 여성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정체성을 구축한 것이다(Rall, 2021). 정치인의 아내들 역시 패션을 통해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Catherine, Princess of Wales)은 자국의 디자이너 브랜드를 착용하여 국가 이미지를 확산하는 패션 외교의 역할을 했고,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는 고급 브랜드와 대중 패션을 결합한 스타일로 정치적 메시지와 행정부의 이미지를 동시에 형성하였으며, 슈퍼모델이었던 프랑스의 영부인 카를라 브루니(Carla Bruni)도 세련된 스타일로 정치와 패션의 연계를 보여주었다(Marsh, 2012/2013).
이처럼 20세기 이후 미디어 정치 시대에 패션은 정치인의 이미지 구축, 국가 브랜드 형성, 젠더와 권력의 수행, 그리고 대중의 감정까지 조작하는 정치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21세기 정치 환경은 SNS와 디지털 미디어를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고, 정치의 중심 무대는 국회에서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6년 2월, 트럼프는 이란이 대량 살상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명분 아래 이스라엘과 함께 전쟁을 시작한 이후로, 전쟁 관련 내용을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 약 90건 이상 게시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미국 대통령이 전쟁 계획에 대한 자신의 의사결정과 공격 계획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며, 즉각적으로 소통하는 사례는 이전에는 없었다(Shin, 2026). 21세기의 정치인은 정책과 이념을 인스타그램, 트위터(X), 틱톡과 같은 플랫폼에서 이미지와 감정 중심으로 전시하는 ‘보여지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패션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각 언어로 작동하며, 정치 담론의 일부로 적극적으로 흡수된다(Kalinina & Voronova, 2011). 특히 SNS에서의 정치적 갈등은 텍스트 논쟁이 아니라 이미지, 댓글, 밈(meme) 등으로 나타나는데, 일론 머스크(Elon Musk)와 도널드 트럼프의 SNS 싸움도 ‘The girls are fighting’과 같이 유희적으로 언급되며, 엔터테인먼트화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Di Placido, 2025).
전통적으로 정장은 권위와 전문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복식이었으나, 현대에 들어 캐주얼 복장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세습이나 정복으로 권력을 쥐고 장엄하게 연출했던 패션의 왕과 달리, 국민이 선출하는 민주사회의 지도자인 대통령은 권력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최소화하고자 한다(Kim & Kim, 2000).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군복 스타일의 복장을 지속적으로 착용하며 전쟁 상황과 국민과의 연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전시 복장’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지도자의 정체성과 정치적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그러나 2025년 2월 미국 백악관 회담에서 이 복장이 논란이 되자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공식 SNS에 “우크라이나인에게는 우리만의 정장이 있다”는 메시지를 게시하며 군인, 의사, 소방관 등 전쟁 현장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의 사진을 함께 공개했다<Fig. 6>. 이는 전쟁 시에는 군복과 작업복이 곧 국가를 지키는 사람들의 ‘정장’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전달한 것이다(Oh, 2025). 이처럼 패션은 국가적 서사를 표현하는 상징이 되기도 하고, 정치인의 진정성과 공감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은 패션을 권력자가 활용하는 정치적 도구에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패션의 정치적 기능은 점차 산업 내부로 이동하였고, 디자이너와 브랜드는 정치적 메시지를 생산하는 주체로 부상하였으며, 패션쇼 역시 하나의 정치적 무대로 전환되고 있다. 2024년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Fashion For Our Future” 행사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CFDA)와 패션 잡지 Vogue가 공동으로 주최한 캠페인인데, 유권자 등록과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행사에는 디자이너 토리 버치(Tory Burch), 톰 브라운(Thom Browne) 등 패션계 인사들과 질 바이든(Jill Biden)을 비롯하여, 학생, 인플루언서 등 약 1,000명 이상이 참여하였다. 참가자들은 “Fashion For Our Future”라는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행진하며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구호를 외쳤다 <Fig. 7>. 한편, 베트멍(Vetements)의 뎀나 즈바살리아(Demna Gvasalia)는 개인의 전쟁 경험과 사회적 불안 등의 정치적 서사를 패션쇼에 재현한다. 1990년대 조지아 내전과 난민 경험은 그의 컬렉션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고, 검은 가죽 코트와 마스크, 욕설이 적힌 티셔츠 등은 전쟁의 공포와 불안을 나타냈다<Fig. 8>. 디자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군복, 제복, 재활용 의상, 그리고 펑크, 고딕, 위장무늬 등은 소비에트 체제의 획일성과 결핍을 반영한 미학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시장에서 소비되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모순을 내포하기도 한다(Bartlett, 2019).
이와 같이, 역사 속에서 패션의 정치적 기능 변화 과정을 고찰한 결과, 패션은 전근대 사회에서는 권력을 과시적으로 상징하였고, 근대에는 대표성과 합법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근면, 절제와 같은 가치를 표현했다. 한편 20세기 미디어 정치 상황에서는 이미지 전략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21세기에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과 결합하면서, 대중의 감정과 공감, 진정성을 해석하는 신호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Ⅲ. 현대 미디어 정치 환경에서 패션의 정치적 기능: 뉴욕타임스 기사 분석
정치 영역에서는 복식 선택의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작은 스타일의 변화조차도 강한 상징적 의미를 생성하며, 이는 정치인의 정체성과 권력 이미지를 더욱 명확하게 고정한다(Bahr, 2025). 본 연구에서는 뉴욕타임스 기사를 바탕으로 21세기 미디어 환경에서 패션의 정치적 기능을 도출하였다.
1. 권력의 시각적 정당화와 정치 브랜드 형성
현대 패션은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지도자의 이미지를 정치 브랜드로 구축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퍼스트레이디 의상 제작이나 대통령 취임식 협찬은 패션 산업이 정치권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LVMH 그룹이 이방카 트럼프(Ivanka Trump)의 의상을 후원하고,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가 직접 취임식에 참석한 사례는 패션이 정치적 상징 생산에 기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Odell, 2025).
군사적 요소를 차용한 복식 역시 권력의 정당화를 강화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군복은 남성성, 규율, 질서, 권위와 같은 상징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며, 정치 지도자가 이를 활용할 경우 강력한 통수권자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효과를 낳는다(Friedman, 2025i).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 퍼레이드를 통해 통제력과 권력의 위엄을 과시하였고<Fig. 9>, 멜라니아 트럼프도 군복풍 정장, 트렌치코트를 지속적으로 착용함으로써 퍼스트레이디의 권력과 위치를 효과적으로 부각시켰다(Friedman, 2025j).
정치인의 복식은 국가와의 동일시를 통해 ‘적합한 지도자상’을 형성하는 역할도 한다.
피트 헥그세스(Peter Hegseth)는 국방 장관 인준 청문회에서 파란 정장, 흰 셔츠, 붉은 넥타이에 더해 성조기 모양 포켓스퀘어, 별무늬 양말, 국기 벨트 버클 등의 ‘트럼프식 유니폼’을 착용함으로써 과하게 애국적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이는 정책 능력에 대한 논란을 직접 해명하기보다, 국가와의 동일시와 군사적 권위를 시각적으로 연상시키며 자신이 ‘적합한 인물’이라는 인식을 형성하게 만든 사례이다. 한편,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이 자주 착용한 “Biden Blue” 색채와 레이밴 선글라스는 개인적 아이콘이 되어, 패션이 정치적 정체성을 각인하는 기능을 수행함을 보여주었다. 트럼프의 파란 정장, 흰 셔츠, 빨간 넥타이도 미국 국기의 색채를 암시하는 정치적 유니폼으로, 그 자신이 곧 국가를 대표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Friedman, 2025g). 한편 넥타이 매듭과 같은 미세한 패션 요소도 권력과 지배 이미지를 구성하는 정치적 도구로 기능한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선택한 두툼한 윈저 매듭(Windsor knot) 넥타이는 힘과 지배, 자신감을 강조하는 ‘파워 룩’으로, 행정부 전체의 시각적 통일성을 형성하였다(Gallagher, 2025b).
더 나아가 패션은 현재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추구하는 미래상을 시각적으로 연출하는 기능을 한다. 트럼프가 금색 인테리어, 금시계, 금 라펠 핀 등을 자주 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황금시대(Golden Age)”라는 긍정적 미래의 정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사례이다(Friedman, 2025g). 또한 트럼프 취임 무도회에서 멜라니아(Melania)와 이방카(Ivanka)가 아르데코와 고전 헐리우드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드레스를 착용한 것도, 과거의 번영과 권력을 현재의 정치 서사로 소환하여 이상화된 미래를 제시하는 ‘시각적 프로파간다’로 기능하였다<Fig. 10>.
2. 정치적 정체성의 수행과 반복을 통한 이미지 고정
패션은 고정된 정치적 속성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반복을 통해 정치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고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Odell, 2025). 즉 정치인은 제한된 복식 선택 범위 속에서 동일한 스타일을 반복함으로써, 대중에게 안정적이고 일관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Bahr, 2025). 예를 들어,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과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가 지속적으로 착용한 팬츠 수트는 신뢰성과 전문성을 지닌 정치적 캐릭터를 구축하는 전략적 도구이다(Friedman, 2024a). 바이든 대통령의 파란색 수트와 넥타이, 질 바이든(Jill Biden) 여사의 셔츠드레스와 플로럴 원피스 역시 4년 동안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바이든 정부의 친근함과 책임감이라는 정치적 브랜드를 축적하였다(Friedman, 2025b). 또한 패션은 정치인의 시그니처 이미지를 통해 권력과 대중의 인식을 형성하는 핵심 장치가 된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Gavin Newsom)은 뒤로 넘긴 젤 헤어스타일과 파란 정장이라는 일관된 복식 코드를 유지하며, ‘기술 관료적이면서도 공격적인 리더’라는 정치적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이는 실리콘밸리식 세련됨과 민주당의 상징색을 동시에 구현하며, 그를 차세대 대선 후보로 인식하게 만드는 브랜드로 기능한다(Gallagher, 2024). 한편 루마니아 극우 정치인들은 전통 블라우스 ‘ie’를 반복적으로 착용함으로써 자신을 ‘전통을 대표하는 정치인’인 것처럼 연출한다(Higgins, 2025). ‘재벌과의 투쟁(Fighting Oligarchy)’을 모토로 하는 민주당 의원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도 수년간 동일하게 유지해 온 안경, 블레이저, 파란 셔츠를 정치적 유니폼처럼 반복하며 신뢰를 강화한 대표적 사례이다<Fig. 11>.
패션으로 고정된 이미지는 정치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스타일은 보수주의, 젠더 이분법, 미국 중심주의를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인데, 특히 시스 드레스에 풍성한 헤어스타일, 인조 속눈썹, 도드라진 입술의 트럼프식 여성 스타일은 대중의 인식 속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곧바로 특정 정치적 성향과 집단 소속을 연상시킨다(Friedman, 2025h).
3. 감성 정치와 여론 형성
패션은 대중의 감정과 인식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서, 논리적 설득보다 정서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패배나 위기 혹은 불확실성과 같은 정치적 상황에 감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대중이 이를 공감하도록 돕는 장치로 기능한다.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의 대통령 양보 연설 복식은 감성 정치의 대표적 사례이다. 그녀는 기존에 반복적으로 착용해온 팬츠 수트, 펌프스, 진주 귀걸이에 크라밧을 더함으로써, 전통과 변화, 남성적 권위와 여성적 정체성이 결합된 자신의 이미지를 일관되게 보여주었다. 특히 크라밧은 여성 정치인의 역사와 오랜 투쟁을 환기시키며, 패배의 순간을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지속되는 투쟁의 일부’로 해석하게 만드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버건디에 가까운 보라색 수트는 정치적 양극성 속 중간지대 그리고 분열된 정치 환경 속에서 통합의 메시지로 읽혔다(Friedman, 2024c).
한편, 젊은 민주사회주의자이자 무슬림 정치인인 조흐란 맘다니(Zohran Mamdani)의 사례도 패션이 정치적 메시지를 감정의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의 얇은 넥타이, 카시오 시계, 커플링과 같은 스타일은 대중적 감각과 문화적 취향을 반영하며, 유권자들이 자신과 비슷한 친근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또한 그는 임대료 동결 공약을 단순한 언어적 설명에 그치지 않고, 새해 첫날 차가운 바다에 정장과 넥타이를 입은 채 뛰어드는 퍼포먼스를 통해 ‘freeze rents’라는 정책 문구를 인상적인 장면으로 바꾸고, 유권자에게 웃음과 놀라움, 친근감을 주었다(Friedman, 2025l).
정치적 불안정은 패션의 소비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가격 상승과 경제적 불확실성은 젊은 세대를 불안하게 하였고, 이는 소비 행동 변화로 이어졌는데, 패스트 패션보다 제이크루(J. Crew)처럼 오래 입을 수 있는 장기적 가치를 지닌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Perhach, 2025).
패션은 또한 정치적 사건을 감정과 밈으로 재구성하여 여론 형성에 개입한다. 교황 선출이라는 권력 교체의 과정은 추기경들의 붉은 로브와 상징적 의복을 중심으로 드라마처럼 패션으로 소비되었고, TikTok과 밈 문화 속에서 런웨이와 같은 방식으로 재해석되었다. 더 나아가 교황 복장을 한 정치인의 이미지가 온라인에서 확산되는 현상은 패션이 정치 권력을 풍자하고 재구성하는 기능으로도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Bubola, 2025).
이처럼 패션은 감정과 상징, 경험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여론을 생성한다.
4. 집단 정체성과 연대의 가시화
패션은 “우리가 무엇을 지지하는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집단 정체성과 정치적 연대를 가시화하는 기능을 한다(Sidell, 2024). 특히 슬로건과 색채, 반복되는 복식 코드는 개인을 집단 이미지로 통합하는데, 같은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함께 행진하는 장면은 개인의 옷차림을 공동의 정치적 입장으로 결집시키며, 연대를 보여준다.
아네스베(agnès b)는 1968년 파리 학생운동의 영향을 바탕으로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인 옷을 제안하며 패션의 민주화를 실현하였는데, 특히 “Nobody owns me”와 같은 슬로건 티셔츠와 예술가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패션을 사회적 메시지와 문화적 담론의 매개로 확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옷차림은 정치적 입장과 공동체적 가치를 드러내는 표현 수단으로 기능하였다(O’Flaherty, 2025).
색채 역시 정치적 입장과 연대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연설 당시 민주당 여성 의원 약 30명이 분홍색 옷을 맞추어 입은 사례는, 동일한 색채를 통해 반(反)트럼프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집단적으로 표현한 예이다<Fig. 12>. MAGA 모자는 원래 정치적 충성과 소속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으나, 그린란드와 캐나다에서 등장한 패러디 모자들은 이를 역전시켜 “Make America Go Away”, “Canada Is Not For Sale”과 같은 메시지를 담으며 새로운 정치적 집단을 형성하였다<Fig. 13>. 브라질 대통령 룰라(Lula)가 “Brazil belongs to Brazilians”라는 문구가 적힌 모자를 착용한 사례도, 복잡한 정치적 메시지를 단순한 시각적 상징으로 압축함으로써 국가 공동체와의 연대를 직관적으로 형성하는 방식을 보여준다(Nicas & Moriyama, 2025). 이러한 패러디는 기존의 정치 메시지를 재해석하며, 집단적 소속과 연대를 강화한다.
패션은 또한 공식적 의례 속에서 집단 정체성을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대통령의 국장에서 서로 경쟁하고 갈등해 온 전·현직 대통령들이 모두 어두운 정장과 유사한 색조의 넥타이를 착용한 모습은 ‘대통령 공동체’라는 상징적 집단 정체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보여주었다<Fig. 14>.
패션은 사회적 약자와 문화적 정체성을 가시화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멧 갈라(Met Gala)의 『Superfine: Tailoring Black Style』 전시는 300년에 걸친 흑인 패션과 블랙 댄디즘의 역사를 조명하며, 패션을 통해 시대의 억압과 저항을 재구성하였다. 특히 이 전시가 멧 갈라 역사상 처음으로 유색인종 디자이너에게 헌정되었다는 점은, 패션이 문화적 대표성과 정치적 포용성을 확장하는 장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McKinley, 2025).
한편, 패션은 권력과의 동일시를 표현하는 신호 체계로 기능한다. 트럼프의 파란 정장과 붉은 넥타이 조합이 행정부 인사들에 의해 반복되며 권력 중심과의 결속을 나타낸 사례는, 패션이 정치적 충성과 소속을 표현하는 집단적 코드로 작동함을 보여준다<Fig. 15>. 이처럼 패션은 정치적 집단 정체성과 연대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사회 언어이다.
5. 진정성 검증 및 윤리적 판단 기능
패션은 정치인의 진정성과 윤리성을 판단하는 윤리적 필터 역할을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와 이멜다 마르코스(Imelda Marcos)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사치와 화려한 복식은 권력자의 도덕적 타락을 상징한다. 특히 정치인들의 사치와 명품 소비는 도덕성을 판단하는 강력한 잣대가 된다. 하마스(Hamas) 지도자가 살해되었지만, 그의 가족은 고가의 에르메스 버킨백(Hermès Birkin)을 들고 있었다는 보도는 지도자의 위선과 민중과의 괴리를 강조하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활용되었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영부인 올레나 젤렌스카(Олена Зеленська)가 2022년 보그의 커버에 등장한 것<Fig. 16>, 카멀라 해리스가 착용한 티파니앤코(Tiffany & Co.) 목걸이까지 사치 패션은 정치적 공격의 빌미가 된다(Friedman, 2024b).
또한 패션은 정치적 메시지와 실제 행동의 일치 여부를 검증하는 기준이 된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 하원의원은 2021년 고가의 행사인 멧 갈라에 참석하여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이후 드레스 비용 지불을 확실히 하지 않아 논란이 발생했다. 이는 패션이 정치적 신념의 표현을 넘어, 그 신념이 실제로 실천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Fandos, 2025).
정치인의 복식은 계급적 위치와 진정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트럼프가 맥도날드에서 노동자 체험 퍼포먼스를 하며 앞치마를 착용했지만, 동시에 프렌치 커프가 달린 고급 정장을 입고 있었던 사례는, 서민적 이미지 연출과 실제 사회적 위치 간의 괴리를 드러내며 대중이 이를 진정성 있는 행위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Fig. 17>.
패션은 공적 권한과 사적 이익이 결합되는 지점을 드러내는 윤리적 판단 장치이기도 한다. 인사관리처 대변인 맥로린 피노버(McLaurine Pinover)는 정부 사무실에서 패션 인플루언서 영상을 촬영하고, 의상 구매 링크를 통해 수익이 발생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대규모 공무원 해고 통보 시점과 맞물리며 공공 자산을 이용한 사적 홍보라는 비판을 받았다.윤리 감시단체는 이를 공직자의 도덕성을 훼손하는 행위로 지적하였다<Fig. 18>. 나아가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은 정치인의 사회적 대표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도 작동한다. 알렉스 소로스(Alexander Soros)와 후마 애버딘(Huma Abedin)의 결혼식이 민주당 핵심 정치인, 후원자, 패션·문화 엘리트가 집결한 ‘정치적 로열 웨딩’으로 묘사된 것은, 화려한 연출 자체가 노동 계층과의 거리감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Fig. 19>. 반대로 소박한 복식은 정치적 신뢰를 강화하는데, 교황 프란치스코가 화려한 장식을 배제하고 단순한 복식을 유지하는 것은 포용과 연대를 강조하는 메시지와 결합 되어 높은 진정성을 형성하며, 패션이 정치인의 윤리적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Gibson, 2025). 한편, 팀 월즈(Timothy Walz)가 티셔츠와 작업복 스타일로 ‘평범한 시민’ 이미지를 구축한 사례는, 비록 일정 부분 연출된 이미지일지라도 패션이 정치적 신뢰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기능함을 보여준다(Trebay, 2024).
The Clintons and Kamala Harris Descend on a Hamptons Wedding of Liberal Royalty (Schleifer & Reber, 2025)
한편, 특정 패션 아이템이나 상징의 사용이 윤리적 판단을 촉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camo(위장무늬) 패션은 트렌드의 하나이지만, 참전 군인의 관점에서는 전쟁 경험 없이 이를 차용하는 행위가 ‘도둑맞은 명예’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역사적 희생에 대한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킨다(Friedman, 2025k). 또한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 브렌던 카(Brendan Carr)가 성조기 배지가 아니라 트럼프 얼굴이 새겨진 금색 라펠 핀을 착용한 사례는, 충성의 상징이 국가가 아닌 개인 지도자임을 반영하는 사례이다(Friedman, 2025f). 이는 공직자의 상징적 액세서리는 공공성과 제도적 중립성을 지향해야 하며, 사적 충성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패션은 정치인의 메시지, 행동, 가치관의 일치 여부를 검증하고, 권력의 도덕적 정당성을 평가하는 윤리적 판단 장치로 기능한다.
그 외에, 패션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권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거나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는 사례도 다수 확인되었다. 뉴욕 패션위크 개막과 함께 진행된 투표 독려 행진에서 참가자들은 “Fashion for our future”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착용하였는데, 이는 기후 위기에 대한 공감을 자극하고 정치적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행사로, 복잡한 정책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빠르게 확산되는 감성 정치의 형태였다(Sidell, 2024). 또한 코너 아이브스(Conner Ives)의 “Protect the Dolls” 티셔츠는 트랜스 여성 보호라는 메시지를 담아 런웨이에서 공개된 이후, 여러 유명 인사들이 착용하고, SNS를 통해 확산되어 빠르게 대중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Gupta, 2025).
패션은 감각적 충격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는 투명 플라스틱 드레스에 갇힌 신체, 질식하는 듯한 마스크, 왜곡된 실루엣 등을 통해 억압과 통제, 사회적 불안을 상징적으로 드러냈으며(Friedman, 2025n), 발렌시아가(Balenciaga)는 런웨이를 유럽 의회 형태로 구성하거나 기름 섞인 물로 범람시키고 폭설 속을 걷게 하는 연출을 통해 브렉시트 이후의 정체성 위기, 기후변화, 전쟁과 같은 글로벌 문제를 극적으로 표현하였다(Rogers, 2025). 이러한 쇼 연출은 관객이 정치적 불안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정치 담론을 경험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패션이 사회운동을 표방한다고 해서, 항상 정치적 진정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샤넬의 페미니즘 런웨이가 “Women’s rights are more than all right”, “History is her story”와 같은 슬로건을 활용하고도 가볍고 비정치적인 연출에 머물렀다는 평을 받은 사례는, 패션이 정치적 메시지를 활용할 때 상업성과 실천성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최근 패션계가 지속가능성, 젠더, 포용성 등을 표현하기 위해 업사이클링 의상, 다양한 젠더와 체형의 모델을 기용하는 것은, 패션쇼 자체를 하나의 정치적 무대로 전환시키며 관객의 감정적 반응과 사회적 인식을 이끌어내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공감 정치 실현을 위한 패션의 소통 방식은 과연 무엇일지 미래 방향을 도출한 구체적인 과정은 <Fig. 20>과 같다.
Ⅳ. 결론: 공감 정치 실현을 위한 패션 커뮤니케이션
본 연구에서는 역사 속에서 패션의 정치적 기능 진화 과정과 현대 미디어 정치 환경에서 패션의 사회적 기능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감 정치 실현을 위한 패션의 소통 방식은 과연 무엇일지 미래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연구 결과, 전근대 사회의 패션은 정치권력을 신성화하였고,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정치에서 패션은 절제된 우아함과 소박한 수트를 중심으로 합리적으로 발전하였다. 20세기 미디어 시대에는 패션이 정치인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선거의 당락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부상하였으며, SNS를 중심의 현대 정치 환경에서는 대중의 공감과 반감 여론을 형성하고, 진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21세기 미디어 정치 환경에서 패션의 사회적 기능을 도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 패션은 과거부터 현대까지 지속적으로 권력을 시각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정치 브렌드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국가행사에 협찬 된 정치인의 의상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복식, 군사적 요소를 차용한 패션 등은 권력의 정당화를 강화한 사례이다.
둘째, 패션은 고정된 정치적 속성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화하지만, 정치인은 동일한 스타일을 고수함으로써, 정체성을 형성하고 고정한다.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나 소속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전문성이나 책임감 등의 대중에게는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각인시킨다. 패션은 정치적 정체성, 이데올로기, 집단 소속을 표현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었다.
셋째, 패션은 정치에서 대중의 감정과 인식을 형성하는 핵심 장치로서, 정치적 메시지를 감정과 상징의 형태로 전달하며 여론 형성에 개입하고 있었다. 특히 패배, 위기, 불확실성과 같은 정치적 상황에 감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대중이 이를 공감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넷째, 패션은 집단 정체성과 정치적 연대를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 슬로건, 색채 등은 개인을 하나의 정치적 이미지로 묶어 공동의 메시지를 강화하였으며, 패션은 지지와 저항, 충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장치로 작동하였다.
다섯째, 패션은 정치인의 진정성과 윤리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었다. 특히 정치적 메시지와 복식 간의 불일치나 정치인들의 사치는 위선 논란을 일으키고, 반대로 소박한 복식은 연출된 이미지일지라도 정치적 신뢰를 강화하며 진정성을 형성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처럼 감성 정치 시대에 패션의 정치적 기능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연대를 강화하고, 감정을 통해 정치적 태도를 형성하며, 반복을 통해 정체성을 고정하고, 집단적 확산을 통해 여론을 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순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21세기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정치는 다소 즉흥적이고, 국가 간의 갈등도 유희적 콘텐츠로 소비될 만큼 가볍다. 진중한 정책이나 전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전쟁의 결정마저도 SNS상에서 마치 게임 하듯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에, 정치나 정책은 연출이 가능한 이미지로 변모하고, 정치로 진실을 전달하는 일이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 결과, 패션과 정치는 서로를 반영하며, 패션의 상징적 힘은 정치 외교 무대에서 국운을 좌우할 만큼 섬세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패션을 현대 정치의 감성적 설득 언어이자, 정치의 신뢰 회복, 문화적 포용성을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으로 보고, 공감 정치 실현을 위해 패션을 통해 진정성을 구현하는 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첫째, 패션은 권력을 과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민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공감의 매개로 활용되어야 한다. 패션이 정치인의 위치를 낮추고 공동체와의 연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때 공감 정치의 기반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치적 패션은 일관된 이미지를 통해 신뢰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어야 안정감을 줄 수 있다. 비록 정치인들이 시민과의 공감을 형성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하거나 수수한 외양을 연출하는 모습이 단발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진정성을 바탕으로 지속될 때, 윤리적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패션은 다양한 사회적 집단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정체성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패션이 특정 집단 혹은 정당을 지지하거나 혹은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표면적 상징 연출에만 치중할 경우, 오히려 진실성을 잃고 정치적 분열을 심화할 수 있다. 즉, 패션이 다양성을 기반으로 올바르게 작동할 경우에만 공감을 확장할 수 있다.
정치는 점점 패션처럼 꾸며지고 소비되며, 패션은 점점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사회 부조리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래의 패션을 통한 정치적 소통은 더욱 빠르게 확산될 것이고, 정치적 의미도 끊임없이 복제되고 재해석될 것이다.
패션이 권력이 아니라 시민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소통의 언어로 활용될 때, 정치 역시 설득의 기술을 넘어 공감의 실천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실질적 도덕성이나 내면적 덕목보다 연출이 효과적인 정치 방법이라는 역사적 사실 속에서도, 본 연구에서는 패션이 권력을 형성하는 사회적 기능은 무엇이고, 패션으로 공감 정치를 위해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일지 미래 방향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있다.
다만, 분석 대상을 신문과 미국의 사례로 국한한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향후 연구에서는 범위를 더욱 확장하여, 다양한 미디어와 국가의 사례를 비교 분석한다면, 전 세계 각국의 공감 정치 실현을 위한 보다 다채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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