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중·일 복식 비교를 통한 한복의 디자인 DNA 규명 및 정체성 확립에 관한 연구
Abstract
The global expansion of K-culture, this study identifies the unique design identity of Hanbok and establishes a systematic “Design DNA” to guide its sustainable evolution. It differentiates Hanbok from the broader, often conflated category of the “Asian Look” by critically examining its structural and aesthetic roots in compared with China’s qipao and Japan’s kimono. The methodology involves a comprehensive literature review of over 80 sources and a comparative formative analysis of 28 representative visual samples (10 from Korea, 9 from China, and 9 from Japan). To ensure analytical objectivity, this study establishes a “Design DNA Analysis Framework” based on the theories of Horn (1975) and Geum (1988). While basic elements including material and color show limited differentiation due to regional proximity, this research focuses on four specialized formative dimensions: 1) Structural Volume, 2) Linear Rhythm, 3) Closure System, and 4) Aesthetic Refinement, as represented by the “Dongjeong” The findings reveal that Hanbok possesses a distinct identity rooted in its “two-piece separate structure,” which contrasts with the integrated silhouettes of neighboring nations. Therefore, the study identifies four essential Design DNA components of Hanbok: 1) Structural Volume characterized by a variable silhouette and “Soft Volume” inherent in its modular structure, 2) Linear Rhythm manifested through asymmetric curvilinear aesthetics, 3) Closure System centered on the Goreum (ribbon tie) as a line-oriented fastening focal point, and 4) Aesthetic Refinement represented by the finishing elegance of the Dongjeong (collar-trim). Furthermore, by empirically verifying the “Design Backflow” phenomenon—where Hanbok’s structural features influenced Ming Dynasty costumes (Goryeoyang)—this research secures Korea’s “Cultural Sovereignty” against contemporary cultural appropriation. It also distinguishes “Essential DNA” from “Variable Elements,” providing strategic guidelines for K-fashion to uphold authenticity while adopting modern trends. Overall, this study enhances the academic status of Korean design and establishes a unique competitive edge in the global fashion market.
Keywords:
comparative costume analysis, cultural sovereignty, East Asian costume, Goryeoyang, Hanbok Design DNA, K-Fashion identity키워드:
복식 비교 분석, 문화 주권, 동아시아 복식, 고려양, 한복 디자인 DNA, K 패션 정체성Ⅰ. 서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오늘날 K-컬처의 글로벌 확산과 더불어 한복은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2025년 ‘한복상점’이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하고(Yun, 2025) 일상 패션으로서의 소비가 급증하는 등 산업적 위상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BTS와 블랙핑크를 비롯한 글로벌 아티스트들의 무대 의상으로 활용되며 한복의 미적 가치는 전례 없는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팽창의 이면에는 한복 디자인의 본질적 체계에 대한 학술적 고찰과 정체성 확립이 미비하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현재 대중화된 현대 한복 디자인의 상당수는 복식의 조형적 원리에 기반하기보다 디자이너의 주관적 해석이나 시각적 효과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이러한 방식은 단기적인 화제성을 창출할 수 있으나, 한복 고유의 구성 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재할 경우 자칫 타 문화권의 디자인 요소가 무분별하게 혼용되어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 특히 최근 글로벌 무대에서 단순히 소재에 한글 문양을 넣거나 전통 장신구를 차용하는 것만으로 '현대적 재해석'이라 명명하는 등, 복식의 구조적 본질보다는 지표적인 요소에 치중하며 정체성이 왜곡된 디자인을 양산하고 있다(Lee & Shin, 2000). 이는 한복의 진정한 정체성을 왜곡하고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우리 복식의 학술적 위상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
최근 주변국에 의해 제기되는 이른바 ‘문화 공정’(SBS News, 2020)과 같은 문화 패권주의 양상(Baek, 2009)은 한복의 학술적 정체성 확립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중국의 문화 예속화 시도(Kim, 2020)에 대응하기 위해 2026년 2월 현재, 국가유산청이 ‘무형유산 전승 현황 비교 연구’에 착수하고(Kim, 2026), 203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범국가적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Park, 2025) 이러한 위기감을 반영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동아시아 복식 문화의 상호영향력 속에서 발현된 한복만의 독자성을 파악하고, 글로벌 패션 시장의 '아시안 룩(Asian Look)'과 차별화되는 한복의 본질적 디자인 DNA(Design DNA)를 규명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패션 디자인의 전통적 구성 요소를 한복의 미의식에 기반하여 재해석한 ▲구조적 양감, ▲선형적 리듬, ▲체결 시스템, ▲조형적 정제미의 4가지 분석 층위를 설정하고, 각 층위에 내포된 한복만의 고유한 디자인 유전자를 체계화하고자 한다.
2. 선행연구 검토
본 연구는 동아시아 복식의 비교와 한복의 독자성 규명을 위해 한복의 미적 가치와 조형적 특성을 분석한 관련 선행연구를 다각도로 검토하였다. 기존 연구는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분류된다.
첫째, 미적 가치 및 이미지 중심의 연구로 Geum(1988)은 조선 복식의 미적 특질을 자연미, 인격미, 벽사미, 전통미의 네 가지 관점에서 체계화하였다. 또한 Lee(2000)는 현대 패션에 투영된 한국적 이미지를 기호학적 방법론으로 접근하여 인간 중심, 자연 친화, 평등 평화, 토템 신화, 은유 및 환유적 이미지로 정의함으로써 한복이 지닌 상징적 함의를 고찰하였다.
둘째, 복식의 외형적 구현 원리를 분석한 연구로서 Geum(1992), Choi & Kim(1993) 등은 선, 형태, 색채, 소재, 문양, 장신구 등 디자인을 구성하는 물리적 요소들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여 한복의 시각적 정체성을 실증적으로 규명하였다.
셋째, 동아시아 복식 비교 및 정체성 논의에 관한 연구로서 최근 대두된 '한푸(Hanfu) 논란'과 관련하여 Kim and Na(2022) 등은 복식 공정에 대응하는 한·중 복식의 구조적 차이점을 실증적으로 규명하였으며 특히 명대 한푸에서 나타나는 고려양(高麗樣)의 영향력을 언급함으로써 한복의 주체적 정체성을 논증하였다. 이는 복식의 유사성이 단순한 종속적 관계가 아닌 역사적 상호작용의 산물임을 입증하고, 한복만의 독자적 디자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학술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한다.
선행연구들은 한복의 미학적 이미지 규명(Geum, 1988; Lee, 2000), 조형 구성 요소 분석(Choi & Kim, 1993), 그리고 최근의 한·중 복식 비교(Kim & Na, 2022)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발전해 왔다. 본 연구는 기존 연구의 성과를 계승하되, 한·중·일 삼국의 복식 체계를 동일 선상에서 대조 분석하여 한복만의 배타적 유전자를 ‘4대 디자인 DNA’라는 학술적 체계로 도출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특히 13~14세기 ‘고려양(Goryeoyang)’ 현상이 명대 복식 실루엣 형성에 미친 역류적 영향력을 고찰하여 한복의 역사적 주체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3. 연구의 범위 및 방법
본 연구는 동아시아 복식의 조형적 전형(Archetype)과 고유한 미적 규범이 완성된 근세시기를 중심 분석 지점으로 설정하되, 복식 체계의 기틀이 형성된 고대부터 19세기까지를 통시적으로 고찰한다. 특히 삼국의 복식 DNA가 조형적으로 완성되어 변별적 특징이 가장 선명하게 대조되는 한국의 조선 후기 및 대한제국기(1700~1910), 중국의 청대(1644~1912), 일본의 에도 시대(1603~1868)를 핵심 분석 시점으로 설정한다.
분석의 공간적 범위는 한·중·일 삼국으로 한정하며, 분석 대상은 복식의 조형적 변별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여성 예복 및 일상복을 중심으로 한다. 유물 및 고증 도판을 통하여 각국의 복식 양식이 가장 정형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전형적 양식들을 선별하여 연구의 분석 자료로 삼고자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행된 단계별 연구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문헌 고찰을 통한 이론적 토대 마련 및 미의식 비교이다. 한국·중국·일본의 전통 복식 및 디자인 이론과 관련된 학술지 및 학위논문 50여 편, 단행본 20여 권, 박물관 도록 10여 권 등 총 80여 권(편)의 문헌을 기초로 삼국 복식의 역사와 조형적 특징을 고찰하였다. 특히 Geum(1988), Park(2014), Shen(2002), Ishiyama(1993) 등을 주요 문헌으로 검토하여 각국의 철학적 배경이 투영된 미학적 지향점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연구의 이론적 근거를 정립하였다.
둘째, 역사적 상관성 분석 및 고려양(高麗樣) 담론의 실증이다. 13~14세기 고려양 현상을 중심으로 한복의 디자인 DNA가 명대 복식에 미친 ‘디자인 역류(逆流)’ 현상을 추적하였다. 시각 자료의 역추적 분석을 통해 한복의 구조적 특징이 타 문화권에 수용되는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삼국 복식 간의 영향 관계 속에서 발현된 한복의 조형적 주체성을 규명하였다.
셋째, 시각 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분석 대상 선정이다. 실증 분석을 위해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중국 북경 의상박물관(BIFT),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 등 각국 공신력 있는 기관의 아카이브와 복식사 전문 문헌을 활용하여 총 250여 점의 기초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 중 ①시대적 전형성, ②조형적 명확성, ③복식 위계의 일치성이라는 3단계 선별 기준을 적용하여 최종 28점(한국 10점, 중국 9점, 일본 9점)의 핵심 도판을 분석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아울러 본 연구는 패션 디자인의 보편적 구성 요소인 선(Line), 색채(Color), 소재(Material), 실루엣(Silhouette)을 분석의 기초 지표로 설정하였다. 이는 Marilyn J. Horn(1975)이 제시한 복식 조형 분석의 표준 체계에 근거한 것으로, 의복을 시각적 예술 형식으로 규명할 때 가장 객관적이고 타당한 분석 기준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구체적으로 실루엣은 의복의 전체적인 외곽선과 외부적 양감(Volume)을 규정하는 상위 개념으로 설정하였으며, 선은 그 실루엣 내부에서 시각적 흐름과 리듬을 형성하는 세부적인 디자인 요소로 정의하여 두 지표 간의 분석적 차별성을 두었다. 또한 소재와 색채는 복식의 표면 질감과 상징적 이미지를 결정짓는 필수 요소로서 고찰하였다. 다만, 실증 분석 과정에서 삼국 복식 간의 소재와 색채는 문화적 인접성으로 인해 독자적 DNA를 추출하는 데 변별적 실익이 낮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소재와 색채의 보편적 속성을 분석의 배경으로 두되, 복식의 본질적 정체성을 결정짓는 구조적 양감, 선형적 리듬, 체결 시스템, 조형적 정제미(여백의 미를 포함한 디테일의 완결성)의 4가지 조형 층위로 분석 틀을 재구성하였다.
넷째, 디자인 DNA 도출을 위한 실증적 대조 분석 및 체계화이다. 수립된 분석 Framework를 바탕으로 선정된 도판을 도식화하여 삼국 복식을 대조 분석함으로써, 타국 복식과 구별되는 한복만의 배타적 유전자인 ‘4대 핵심 디자인 DNA’를 정립하였다. 이는 한복 정체성의 학술적 근거를 공고히 하여 동아시아 복식 문화권 내 한국 복식의 고유한 지위를 확보하고, 나아가 현대적 문화 침탈에 대응하는 ‘문화적 주권(Cultural Sovereignty)’을 수호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Ⅱ. 한·중·일 전통 복식의 조형 원리 및 역사적 상관성
본 장에서는 한·중·일 복식의 고유한 디자인 DNA를 규명하기 위한 전제로, 각국 복식의 조형적 특질을 심층 고찰한다. 이는 단순히 민속적 배경을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삼국 복식의 구조적 체계와 미학적 원리를 분석함으로써 후술할 비교 분석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복식은 특정 지역의 역사적 궤적과 지리적 특성을 투영하는 민속 문화의 산물로서, 사회적 배경과 자연환경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 예술사적 관점에서 동일 문화권 내의 건축, 미술, 복식은 상호 유사한 조형 언어와 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Kim & Jeon, 1997). 따라서 동아시아 삼국의 복식 구조가 각기 다른 형태로 분화된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지리적 환경과 그 안에서 자생한 고유의 미의식을 통합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문화 인류학적 전제를 바탕으로 삼국 복식의 형성과 변천을 규정짓는 환경적 요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민속 복식은 민족의 미의식이 응축된 시각적 상징물이다. Park(1989)은 복식 문화가 세대를 거친 전승을 통해 생명력을 얻으며, 이것이 각국의 고유한 '디자인 지문'으로 남는다고 분석하였다. 특히 동아시아 복식 비교에 있어 이러한 조형적 특징은 '아시안 룩(Asian Look)'이라는 포괄적 명칭에 가려진 한·중·일 각국의 독자적 정체성을 규명하는 결정적 지표가 된다. 본 연구는 이를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대 패션 디자인의 원형(Archetype)으로 작동하는 '조형 DNA'로 정의하고 그 형질적 근거를 추적하고자 한다.
1. 환경요인에 따른 구조적 분화
한·중·일 삼국은 지리적 인접성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기후 환경과 주거 문화의 영향으로 상이한 복식 구조를 발전시켜 왔다.
첫째, 한국은 대륙성 기후와 온돌 주거 문화에 최적화된 ‘이부식(Two-piece)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Hong et al., 2004). 한국 복식은 추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북방 한대형(寒帶型)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활동성과 보온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수구(袖口)가 좁은 상의와 바지를 병용하는 체계를 형성하였다(Lee, 2003). 특히 한국 특유의 온돌 주거에 따른 좌식 생활은 하의의 폭을 넓고 여유 있게 만들었으며(Park, 1998), 이는 신체와 의복 사이에 공기층을 형성하여 보온력을 높이는 기능적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이분식 구조는 필요에 따라 의복을 겹쳐 입는 적층(Layering)에 용이하여 극심한 기온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하였다(Ryu & Kim, 1998). 이는 평면 재단에서 출발하면서도 착용 시 인체와 의복 사이의 공간감을 통해 입체적 볼륨을 형성하는 한복만의 독특한 조형미와 동적인 생동감의 원천이 되었다.
둘째, 중국은 광활한 영토와 잦은 정권 교체로 인해 복식 체계의 불연속적 변화를 겪으며 ‘일체형 포(袍)’ 문화를 정착시켰다(Hwa, 2008). 초기에는 상의(衣)와 하의(裳)가 분리된 형태였으나, 유교적 예제(禮制)의 영향으로 신체를 깊게 감싸는 심의(深衣) 형식이 발달하였다(Yang & Lee, 2017). 이후 청대 만주족의 호복(胡服)이 유입되면서 상하의가 하나로 연결된 일체형 포 구조가 중국 복식의 전형으로 확립되었다(Kim, 2021). 이는 제국의 사회적 신분과 위엄을 가시화하는 장치로서,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포를 통해 신체를 은폐하고 수직적인 장중함을 강조하는 데 최적화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현대 치파오의 원형으로서 인체 곡선을 반영하는 신체 밀착형 실루엣의 토대가 되었으며, 한국의 활동적 구조나 일본의 개방적 구조와는 차별화되는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미학을 형성하였다.
셋째, 일본은 고온다습한 섬나라 기후에 대응하기 위해 공기 순환이 용이한 ‘개방형 구조’와 ‘평면적 조형미’를 발전시켰다. Hong et al.(2004)에 따르면 일본의 기모노는 통풍과 환기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직선 재단을 통해 몸과 옷 사이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깃과 소매 부리 등을 개방하여 열기를 배출하는 구조를 취한다. 초기에는 대륙의 영향으로 분리형 형식이 존재했으나, 점차 일본 고유의 환경에 맞춰 직선적 평면 구조의 일체형 포인 나가기(長着)로 수렴되었다(Yeo, 2015). 특히 습기로 인한 원단의 변형을 막기 위해 고착화된 직선 위주의 재단법은 인체의 곡선을 무시하고 옷감 본연의 면적과 문양을 강조하는 독특한 시각언어를 구축하게 하였다. 이는 에도시대 고소데와 오비(Obi) 장식에서 정점에 달하며, 신체선보다 복식 표면의 회화적 미학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Yeo, 2015).
2. 삼국의 미의식과 색채관의 대조
동아시아 삼국의 복식은 인접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견(Silk), 면(Cotton), 마(Hemp), 모(Wool)등 천연 섬유를 공통된 소재적 토대로 공유해 왔다. 특히 최고급 복식의 주재료인 견직물은 삼국 모두에서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는 핵심 매개체였으며, 이는 동아시아 복식 문화권이 시각적으로 유사한 질감적 범주를 형성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재적 보편성 안에서도 각국은 고유한 철학적 배경에 따라 소재를 다루는 방식과 미적 지향점을 달리하며 독자적인 복식 문화를 구축해 왔다.
첫째, 한국 복식은 인위적인 기교를 배제하고 자연과의 순응을 지향하는 ‘비움의 미학’을 추구한다(Park, 2014). 소색(素色)을 선호한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전통(Geum, 1992)은 단순히 색채의 부재가 아니라, 모든 색을 포용하는 근원적인 생명력과 도덕적 결백을 상징하는 고도의 정신적 선택이었다. 한복의 곡선은 지붕의 처마나 능선의 실루엣을 닮아 인체와 결합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준다(Yun & Oh, 2009). 또한, 신체를 노출하지 않는 ‘감춤의 미’를 통해 내면의 격조를 드러내는 것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Kim & Park, 2018). 이러한 절제된 색채관과 선 중심의 조형미는 현대 패션에서도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원형으로 작용하며 독보적인 미학적 위상을 점하고 있다(Choi & Kim, 1993).
둘째, 중국 복식은 색채와 문양을 통해 권위를 가시화하는 ‘충만(Fullness)의 장식미’를 지향한다(Yang & Lee, 2017). 음양오행 사상에 기반하여 황색을 황제의 상징으로, 적색과 금색을 길상의 표상으로 사용하는 등 색채를 사회적 위계와 통치 철학을 공고히 하는 정치적 장치로 활용하였다. Hwa(2008)에 따르면 복식 전면을 화려한 자수와 금박으로 채우는 정교한 공예 기법은 제국의 장엄함을 상징하며, 이는 의복의 구조적 변화보다는 표면의 장식적 풍요로움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하였다. 따라서 압도적인 문양과 강렬한 원색의 대비는 중국 복식만의 화려하고 폐쇄적인 미학을 완성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셋째, 일본 복식은 자연을 정교하게 재구성하여 의복이라는 한정된 평면 위에 담아내려는 ‘탐미적 정제미’를 특징으로 한다(Choi & Lee, 2007). 기모노는 단순한 직선 구조를 바탕으로 하되, 사계절의 변화를 안감과 겉감의 배색 조화인 ‘가사네 노 이로메(重ねの色目)’를 통해 정밀하게 표현한다(Lee, 2017). 이는 거대한 자연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축소 지향적으로 재구성하는 일본인 특유의 조형 감각의 발로이다(Lee, 2008). 특히 겉으로 드러나는 배색뿐만 아니라 소매 안쪽이나 깃의 겹쳐진 틈에서 살짝 비치는 미묘한 색의 합(合)을 중시하는 태도는, 극도로 섬세하고 탐미적인 일본 복식만의 독자적인 색채 체계를 확립시켰다.
이처럼 삼국은 각기 다른 미학적 지향점을 지니고 있으나, 근간이 되는 음양오행 사상과 천연염료, 그리고 실크라는 소재적 토대를 공유함에 따라 외형적으로는 상호 유사한 시각적 범주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 배경 너머에는 국가 간 복식 제도의 교류와 영향 관계 속에서 형성된 '구조적 독자성'이 존재한다. 특히 특정 시기에 발현된 복식 양식의 전파와 수용 과정은 삼국의 복식이 단순히 닮아가는 것을 넘어, 각자의 조형적 주체성을 어떻게 정립해 나갔는지 보여주는 핵심적 단초가 된다.
이에 본 연구는 소재와 색채의 보편적 층위를 전제로 하되, 삼국 복식의 결정적 변별점을 규명하기 위해 역사적 상관성 속에서 발현된 구조적·조형적 변화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 중심에는 한복의 독자적 구조가 타국에 투영된 ‘고려양(高麗樣)’담론이 있으며, 이를 통해 한복 디자인 DNA의 본질과 역사적 주체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3. 복식의 역사적 상관성과 고려양(高麗樣)의 담론 체계
동아시아 복식사는 특정 문화권에 의한 일방적인 수혜나 종속이 아닌,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변용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13~14세기 원(元)대와 명(明)대 초기에 걸쳐 대륙 전반에 확산된 ‘고려양(高麗樣)’ 현상은, 한복의 디자인 DNA가 타 문화권으로 역유입되어 새로운 미적 기준을 제시한 복식 문화의 주체적 역류(逆流) 현상을 증명하는 결정적 사례이다(Kim & Na, 2022).
당시 명나라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한 짧은 상의와 풍성한 하의의 실루엣은, 기존 한족(漢族)의 전형적인 포(袍) 문화나 긴 저고리 형태인 장유(長襦) 위주의 복식 체계와 확연히 대조되는 조형적 특징을 지닌다. <Fig. 1>은 명대 여성 복식의 전형적인 유(襦)와 군(裙)의 구성으로, 상하의가 긴장감 없이 수직으로 하강하는 형태를 보여준다. 반면, <Fig. 2>의 『보령사명대수륙화(寶寧寺明代水陸畵)』 인물도에서는 고려양의 영향으로 상의의 길이가 급격히 단축되고 치마의 볼륨이 강조된 변모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Figure Painting from Shuiluhua(Water and Land Ritual Painting) Reflecting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Goryeoyang(Goryeo Style) (Sugimoto, 2013, p. 94)
본래 한족 복식 역시 상하의가 분리된 이부식(二部式) 구조를 취하고 있었으나, 고려양의 영향이 가미되면서 저고리(襦)의 길이는 짧아지고 여밈의 형태와 넥 라인이 변모하여 한복의 조형적 특징과 흡사한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소매폭이 좁아지는 등 상의 전반의 단축화와 밀착화가 일행(一行)하였는데, <Fig. 2>에서 확인되는 깃의 형태와 도련의 완만한 곡선미, 그리고 슬림해진 배래선은 이러한 형태적 변화의 핵심이다. 이는 기존의 평면적이고 직선적인 한족 유(襦)의 구성 방식에서 벗어나, 상의의 밑단 선이 곡선화되면서 치마 위로 짧게 안착하는 한복 특유의 구조적 모듈(Modular)이 투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허리선 위로 높게 배치된 치마의 풍성한 주름이 강조되면서, 상체가 짧고 하체가 길어 보이는 한복 특유의 고상형(高上型) 실루엣이 명대 여성 복식의 주류로 전이되었다. 이러한 실루엣의 변천은 이후 청대(淸代) 기포(旗袍)의 도입으로 신체 밀착형 원피스 구조가 보편화되기 전까지, 한복의 디자인 DNA가 명대 한족 복식의 조형 형성에 유기적으로 관여했음을 시사하는 실증적 근거가 된다.
결국 고려양의 실증적 존재는 한국 복식이 중국 복식에 종속된 형태가 아니라, 국경을 넘어 강력한 전파력을 지녔던 미적 원형(Archetype)이었음을 입증한다.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은 한복의 디자인 DNA가 단순한 전통 유산을 넘어, 타 문화권의 왜곡으로부터 수호되어야 할 핵심적인 학술적 자산이자 복식 주권(Costume Sovereignty)의 강력한 토대임을 명시한다
4. 삼국 복식의 시대별 형태 변화 도식화 및 정체성 분석
본격적인 조형 분석에 앞서 동아시아 삼국 복식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고찰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민속 복식은 고착된 유물이 아니라 시대적 요구와 사회적 유행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온 ‘역동적인 디자인 체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추이를 추적하는 작업은 삼국 복식의 전형(Archetype)이 어떠한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거쳐 고유의 미학적 정점에 도달했는지를 규명하고, 향후 도출될 디자인 DNA의 역사적 당위성을 확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초기 동아시아 복식은 문화적 교류를 통해 일정 부분 유사성을 공유하였으나(Kim & Chae, 2016), 점차 각국의 기후, 주거 환경, 독자적 미의식과 결합하며 세 갈래의 조형적 경로를 걷게 되었다. <Table 1>은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삼국 복식이 독자적인 실루엣과 구조로 분화되어 온 과정을 도식화한 것이다. 구체적인 변천 양상은 다음과 같다.

Chronological Illustration of Formative Changes in East Asian Folk Costumes: Korea, China, and Japan
첫째, 기원전(B.C.) 초기 형성기에 한국과 중국은 북방계 기마민족의 영향으로 저고리와 바지로 구성된 유동적인 이분식(二部式) 구조를 공유하였다. 반면, 일본은 직물을 단순 가공하여 머리에 꿰어 입는 판초(Poncho) 형태의 원시적 외관을 띠며 대륙과는 차별화된 초기 형태를 보였다(Koike et al., 2005).
둘째, 서기 400년경(고대)의 분화기에 이르러 삼국은 저고리와 치마라는 기본 틀을 공유하면서도 세부 조형에서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은 활동성을 유지한 채 한복의 원형인 저고리와 치마의 기틀을 확립한 반면, 중국은 거대한 소매와 바닥을 끄는 긴 치마를 통해 대륙 특유의 장중함과 위엄을 강조하였다. 일본은 이 시기에 비로소 저고리와 바지 체계를 갖추며 본격적인 복식 문화를 형성하였다(Koike et al., 2005).
셋째, 서기 1200년경(중세)의 심화기는 각국의 독자적 양식이 뚜렷해진 시기이다. 한국은 긴 저고리와 풍성한 치마의 조합을 통해 유연한 실루엣을 고수한 반면, 중국은 포(袍) 내부에 긴 치마를 중첩하는 방식을 채택하였고, 일본은 오늘날 기모노의 원형인 직선적 일체형 포(袍) 중심의 복식 체계로 진입하였다.
넷째, 서기 1700~1900년대(근세 및 근대 정립기)에 이르러 삼국 복식은 완전히 차별화된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한국은 짧은 저고리와 풍성한 치마가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상박하후(上薄下厚)'의 실루엣을 완성하였으며, 중국은 만주족의 영향으로 수직적 밀착미를 강조하는 치파오(Qipao) 형태로 변모하였다. 일본 역시 오비(Obi)를 활용한 화려한 장식성이 가미된 기모노(Kimono)의 전형을 구축하며 각기 다른 미학적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러한 변천 과정을 거쳐 한복은 저고리, 치마, 바지 등 독립된 아이템의 중첩과 분리를 통해 조형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독자적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이와 같이 각국의 기후 환경과 미의식에 따라 분화된 조형적 특징은 동아시아 삼국 복식의 전형(Archetype)을 형성하는 핵심 기틀이 되었다.
동아시아 복식의 거대한 계보 속에서 한국은 이분식 구조의 원형적 순수성을 수호하였으며, 중국은 다민족 융합을 통한 권위적 통합을, 일본은 도서(島嶼) 국가 특유의 정밀한 조형성을 통해 각기 다른 디자인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Ⅲ. 한・중・일 복식 디자인 구성 요소의 비교 분석
본 장에서는 연구 방법에서 제안한 ‘디자인 DNA 분석 Framework’를 적용하여 삼국 복식을 동일한 조형적 준거 틀 위에서 대조 분석한다. 이는 삼국 복식의 공통적 조형 요소 내에서 미의식이 충돌하고 분화되는 지점을 추적함으로써, 한복만이 보유한 본질적 정체성을 실증적 데이터로 추출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삼국의 복식 양식 속에 내포된 한복 고유의 조형적 가치를 분석하고 체계화된 연구 결과를 도출하고자 한다.
1. 구조적 양감과 실루엣(Structure & Silhouette): 분리형 모듈과 일체형 포(袍)의 대비
복식의 전체적인 부피와 체적을 결정짓는 구조적 양감은 인체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삼국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발현된다.
첫째, 한복의 ‘이분식(Two-piece) 분리 구조’와 중국·일본의 ‘일체형(One-piece) 포(袍) 구조’가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러한 구조적 분화는 신체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하며, 특히 한복은 인체를 분절(Segment)하여 인식함으로써 각 부위의 활동성과 조형적 비례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Im, 2011).
한복은 저고리와 치마가 독립된 모듈로 구성되어 인체 비례를 가변적으로 재설계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닌다. 이러한 구조적 유연성은 시대를 관통하는 변천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고구려 무용총(5세기) 벽화 속 엉덩이를 덮는 긴 저고리<Fig. 21>에서 시작하여, 고려시대 박익묘 벽화의 과도기적 길이를 거쳐<Fig. 22>, 조선후기 미인도<Fig 23>에 나타난 극단적으로 짧은 저고리에 이르기까지, 한복은 고정된 양식에 매몰되지 않고 당대의 미감에 능동적으로 조응하며 비례의 변주를 거듭해 왔다. 특히 <Fig/ 23>의 조선후기 실루엣이 보여주는 ‘상박하후(上薄下厚)’의 극적인 대비는, 신체를 수직적으로 은폐하거나 밀착시키는 주변국의 일체형 구조에서는 도출될 수 없는 한복만의 독자적인 가변적 양감(Variable Volume)의 산물이다. 반면 중국의 치파오와 일본의 기모노는 상·하의가 연결된 일체형 구조를 통해 시각적 연속성을 지향한다.
Source: Mural of Muyongchong (Early 5th Century). Dancing Women. Ji'an, China. Digital Heritage Archive, National Museum of Korea.(Chae, 2012, p. 24)
Mural of Bak Ik's Tomb (Early 15th Century). Handmaidens. Gobeop-ri, Miryang, Korea. (Hong et al., 2011, p, 178)
Source: Sin, Y. B. (19th Century). Portrait of a Beauty. Ink and colors on silk. Kansong Art Museum, Seoul, Korea.
둘째, 신체와 의복 사이의 ‘공간 점유 방식’에서 차별화된다. 한복은 평면 재단된 의복이 인체와 만날 때 형성되는 여유 공간, 즉 ‘소프트 볼륨(Soft Volume)’을 통해 입체성을 획득한다. 이는 인체의 곡선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중국 치파오의 ‘수직적 밀착 구조’<Fig. 24>나, 인체의 굴곡을 의도적으로 소거하여 원통형으로 가두는 일본 기모노의 ‘박스형(T-line) 구조’<Fig. 25>와 대조된다. <Fig. 24>에서 보이듯, 청대 이후 정착된 치파오는 목선부터 발끝까지 단일한 선으로 연결된 일체형 구조를 취한다. 이는 인체의 수직적 선을 극대화하며, 신체의 굴곡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직설적인 조형 언어’를 구사한다. 여백과 여유 공간을 통해 체형을 보완하는 한복과 달리, 의복을 신체에 밀착시켜 유기적인 생동감을 형성하는 동양적 슬림핏(Slim-fit)의 전형을 보여준다. <Fig. 25>를 보면 직선 재단된 긴 천을 몸에 감아 오비(Obi)로 고정하는 착장 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처럼 기모노는 인체를 하나의 원통형(Cylindrical) 공간 안에 가두는 구조를 취한다. 이는 인체의 생리적 굴곡을 의도적으로 소거하고 의복 표면을 하나의 거대한 화폭으로 활용하는 ‘추상적 조형주의’의 산물이다. 결과적으로 기모노는 착용자의 신체적 운동성보다는 옷감의 문양과 배색이 빚어내는 평면적 예술성을 극대화하는 장치가 된다. 결과적으로 한복은 착용자의 동세에 따라 공간이 변모하는 ‘비결정적 실루엣’을 형성하며, 이는 고정된 형태를 강요하는 주변국의 ‘결정론적 실루엣’과 구별되는 핵심 DNA가 된다.
2. 선형적 리듬(Linear Rhythm): 유기적 곡선과 정형적 직선의 대비
실루엣의 외곽 경계를 확정하는 ‘선(Line)’의 표현에 있어 삼국은 각기 다른 시각적 리듬을 구사한다.
첫째, 한복의 ‘비대칭적 유기적 곡선’은 중국·일본의 ‘대칭적·직선적 선형’과 뚜렷한 변별성을 가진다. 한복의 깃, 섶, 배래에서 나타나는 완만한 곡선은 인위적 대칭의 경직성을 탈피하여 자연스러운 생동감을 부여한다. 이는 수직적 긴장감을 강조하는 중국 치파오의 직선적 파이핑(Piping)이나, 옷감 본연의 직선적 평면성을 고수하는 일본 기모노의 기하학적 선과 대조적이다. <Fig. 2>의 고려양 분석에서 드러나듯, 한복의 곡선미가 명대 복식의 저고리 도련에 영향을 주어 선의 연질화(Softening)를 일으킨 현상은 한복의 선형적 리듬이 지닌 강력한 조형적 주체성을 방증한다.
둘째, 선의 움직임이 가지는 ‘동적 시간성’의 차이다. 한복의 선은 착용자의 호흡과 움직임에 따라 궤적이 변화하는 동적 리듬을 지향하는 반면, 일본 기모노는 정지된 상태에서 문양의 전체상이 완벽히 드러날 때 가치가 극대화되는 정적(Static) 선형을 추구한다. 이러한 차이는 한복을 ‘움직이는 조형물’로, 주변국 복식을 ‘고정된 건축물이나 화폭’으로 인식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3. 체결 시스템(Closure System): 선형적 율동과 점·면적 장식의 대비
복식의 디테일과 여밈은 기능적 역할을 넘어 각 문화권의 미의식을 응축한 상징적 기호이다(Jeong, 2012). 삼국은 여밈의 형태와 위치에 따라 확연한 조형적 변별력을 보이며, 이는 현대 패션에서 각국의 디자인 DNA를 식별하는 핵심 지표가 된다. 여밈과 디테일은 각 문화권이 추구하는 조형적 완결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다.
첫째, 여밈의 형태가 ‘선(한)-점(중)-면(일)’의 체계로 명확히 분화된다. 한복의 ‘고름’은 저고리를 고정하는 기능을 넘어 상체에 수직적 율동감을 부여하는 ‘선의 장식성’을 극대화한다. 이는 독립된 공예품으로서 중심선을 따라 반복 배치되는 중국 판커우(Pankou)의 ‘점적(Point) 집약미’나, 등 뒤에 거대한 장식 면을 형성하는 일본 오비(Obi)의 ‘면적(Planar) 구성미’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Fig. 26>에 제시된 청대 재현 치파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깃과 도련을 따라 촘촘하게 수놓아진 화려한 선 장식과 규칙적으로 배열된 매듭단추는 중국 복식이 지닌 밀도 높은 장식적 완성도를 가시화한다. 꽃이나 동물 문양으로 정교하게 형상화된 판커우는 의복의 중심선을 따라 반복적으로 배치되어, 단순한 구조적 여밈의 기능을 넘어 독립적인 공예품으로서의 성격을 띤다(Rai, 2017). 이러한 점적 요소의 리드미컬한 반복은 시선을 특정 장식에 고정시켜 긴장감을 부여하며, 한복의 여백미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화려한 장식미를 완성한다(Yang & Jang, 2021).
둘째, 디테일이 지향하는 ‘시각적 밀도’의 차이다. 한복의 ‘동정’은 목선을 정갈하게 잡아주며 시각적 질서를 완성하는 ‘정제된 마침표’ 역할을 한다. 이는 의복 전체를 화려한 자수와 파이핑으로 채워 시각적 압도감을 주는 중국의 ‘충전(Filling) 미학’이나, 다중의 레이어링을 통해 안쪽 깃을 겹겹이 노출하는 일본의 ‘탐미적 레이어드’ 방식과 대조된다. 한복은 디테일을 최소화하여 선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절제의 완결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디테일은 면의 중첩과 확장을 통해 시각적 밀도를 구축하고(Lee, 2011), 의복의 구조적 단순함을 화려한 장식성으로 상쇄한다. <Fig. 27>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모노의 착장은 다중의 레이어링을 통해 안쪽 깃의 단면들을 면면히 노출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이는 속옷의 깃을 안으로 여며 은닉하는 한복의 폐쇄적 레이어링과 대조되는 지점으로, 안쪽의 색채와 문양을 의도적으로 중첩시켜 노출함으로써 복식을 하나의 입체적인 공예품으로 완성하려는 일본 특유의 탐미주의적 설계 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Valk, 2018).
4. 조형적 정제미(Aesthetic Refinement): 디테일의 마감과 시각적 완결성
본 절에서는 복식의 최종적인 시각적 완성도를 결정짓는 세부 마감 처리(Finishing)와 이를 통해 구현되는 ‘조형적 정제미’를 분석의 지표로 설정한다. 이는 화려한 표면 장식을 부가하는 방식과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의복의 본질적 형태를 정돈하고 구조적 종지부를 찍는 마감 기법에서 발현되는 각국만의 고유한 미의식을 고찰하기 위함이다.
특히 평면적인 복식 구조가 인체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시각적 혼란을 어떻게 제어하고 정제하는지에 주목하여, 각국 복식의 최종적인 조형적 완결성을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 시각적 정점을 찍는 ‘동정(Collar-trim)’의 존재이다. 한복은 짙은 색의 깃 위에 순백색의 동정을 덧댐으로써 얼굴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전체 실루엣에 명료한 마침표를 찍는다. 이는 다른 복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복만의 독자적 요소로, 직선과 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백색의 선형적 요소를 강조해 조형적 순수성과 정갈함을 부여한다. 반면 중국 치파오와 일본 기모노는 깃 자체의 패턴이나 배색을 강조할 뿐, 한복처럼 별도의 마감재를 덧대어 시각적 환기 효과와 정제된 미감을 창출하는 구조적 장치를 지니지 않는다.
둘째, 표면 장식을 대하는 ‘절제의 미학’의 차이이다. 한복은 복식 전면을 문양으로 채우기보다, 동정이나 고름, 끝동 등 특정 부위의 포인트(Point) 구성을 통해 전체의 균형을 잡는 ‘여백의 정제미’를 지향한다. 이에 반해 중국 치파오는 두꺼운 직물 위에 촘촘한 자수를 놓아 표면의 밀도를 극대화하는 ‘충만의 장식미’를 추구하며, 일본 기모노는 <Fig. 28>에서 보이듯 의복 전체를 하나의 평면 캔버스로 간주하고 정교한 회화적 풍경을 담아내는 ‘평면 예술성’에 집중한다. (Milhaupt, 2014).
셋째, 동적인 생동감과 정적인 완결성의 대조이다.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선의 궤적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한복의 조형미는 인위적인 기교를 배제한 자연스러운 정제미를 보여준다. 이는 정지된 상태에서 문양의 완벽한 전체상(Ensemble)이 드러날 때 가치가 극대화되는 기모노의 정적인 정제미와 선명하게 대조된다.
결과적으로 한복은 백색 동정으로 상징되는 정교한 디테일과 절제된 배치를 통해, 인위적 기교를 넘어선 고도의 ‘조형적 정제미’를 핵심 DNA로 보유하고 있음을 실증하였다.
Ⅳ. 한복 디자인의 본질적 DNA 도출 및 비교 분석
본 장에서는 제3장에서 수행한 한·중·일 복식의 조형적 대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타국 복식과 차별화되는 한복만의 배타적 정체성을 결정짓는 본질적 디자인 DNA를 추출하고자 한다. 이는 한국인의 신체관과 미의식이 투영된 조형 원형을 체계화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규명된 지표들은 복식 주권 수호를 위한 실증적 근거이자 현대 패션의 창의적 원천(Source)으로 기능하게 된다.
1. DNA 1: 구조적 양감과 가변적 실루엣(Structural Volume & Variable Silhouette)
한복의 첫 번째 디자인 DNA는 상·하의가 독립된 ‘이분식 모듈 구조’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가변적 실루엣’의 유기적 결합에 있다. 이는 인체를 규격화된 틀에 가두는 중국과 일본의 일체형 포(One-piece) 구조와 확연히 대조된다.
첫째, 개방적 모듈 시스템으로서의 구조적 유연성이다. 한복은 저고리와 치마라는 독립된 모듈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저고리의 길이를 조절하거나 치마의 허리 위치를 가변적으로 운용함에 따라 인체 비례를 자유롭게 재설계할 수 있다.
둘째, 주름의 중첩이 빚어내는 ‘소프트 볼륨(Soft Volume)’이다. 인위적인 보형물을 사용하는 서구 복식이나 신체 윤곽을 복제하는 중국의 치파오와 달리, 한복은 직물의 물성과 착용자의 호흡에 의해 형성되는 유동적 양감을 지향한다. 이는 고정된 형태미를 강요하지 않고 동세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한복만의 ‘비결정적 실루엣’을 완성한다.
2. DNA 2: 선형적 리듬과 비대칭 곡선미(Linear Rhythm & Asymmetric Curvilinearity)
한복의 선은 평면의 직선과 인체의 입체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유연한 궤적을 지향하며, 정적인 우아함 속에 동적인 생동감을 불어넣는 핵심 유전자가 된다.
첫째, 비대칭적 유기적 곡선의 조형성이다. 깃, 섶, 배래 등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곡선미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한국 전통 건축의 처마선이나 달항아리의 선형과 궤를 같이한다.
둘째, 동적 리듬을 내포한 선조미(Lineal Beauty)이다. 엄격한 대칭과 점(點)적 장식을 강조하는 중국 복식이나, 기하학적 수직성을 고수하는 일본 복식과 달리, 한복의 선은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라 궤적이 변화하는 유동적 리듬을 가진다. 특히 섶코와 배래의 곡선은 인위적 작위성을 배제한 자연스러운 흐름을 완성하며, 현대 패션 디자인에 유연한 리듬감을 부여하는 고차원적 디자인 DNA로 작동한다.
3. DNA 3: 선(線) 중심의 체결 시스템(Linear Closure System)
한복의 여밈은 구조적 고정을 넘어 평면적인 의복 위에 입체적인 선의 흐름을 부여하는 고도의 미학적 기제이다.
한복의 세 번째 DNA인 ‘고름 시스템’은 단추 중심의 중국 판커우(Pankou)나 일본의 면적 결속 방식인 오비(Obi)와 대조되는 독특한 가변적 기능성을 지닌다. 고름은 매듭의 위치와 길이에 따라 실루엣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으며,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시각적 잔상을 남기며 여백을 채우는 미학적 방점이 된다. 이러한 선(Line) 중심의 여밈 체계는 평면적인 저고리 표면에 입체적인 유희를 더하며, 현대적 미니멀리즘 디자인에서도 절제된 화려함을 구현할 수 있는 독자적인 디자인 자산이 된다.
4. DNA 4: 조형적 정제미로서의 동정의 미학 (Aesthetic Refinement as Represented by the 'Dongjeong')
한복의 조형적 완결성은 화려한 외적 장식의 첨가가 아닌, 복잡한 시각적 요소들을 하나의 정점으로 수렴시키고 정제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본 연구는 이러한 한복의 최종적 미학을 구현하는 핵심 기제로서 ‘동정’과 그로 인해 발현되는 ‘여백’의 관계성에 주목하였다.
첫째, 시각적 질서를 수렴하는 조형적 마침표로서의 가치이다. 저고리의 깃 위에 덧대어진 백색의 동정은 깃, 섶, 배래 등 복잡하게 얽힌 구조적 선들을 하나의 시각적 정점으로 응축시키며 실루엣의 명료한 마침표를 찍는다. 이는 의복 전체를 화려한 문양으로 채우는 주변국의 '충만(Fullness)'의 전략과 대조되는 한국 특유의 ‘여백과 방점’의 미학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복의 정제미는 장식을 복식 전면에 나열하기보다 원단 본연의 질감을 살리고 시각적 비움(Space)을 확보하는 여백의 운용을 통해 완성된다. 의복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로 간주하여 밀도 높은 문양을 그려 넣는 중국의 자수 기법이나 일본의 유젠(Yūzen) 염색 기법과 달리, 한복은 문양을 특정 부위에 국한하거나 배경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배치함으로써 형태적 정갈함을 극대화한다. 즉, 동정은 복식의 시각적 혼란을 잠재우고 착용자의 인상을 정돈하는 고도의 정제된 디자인 장치로 기능한다.
둘째, 실용적 지혜가 투영된 절제의 미학이다. 동정은 잦은 세탁이 어려운 한복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염되기 쉬운 깃 부분을 보호하고 교체 가능하게 고안된 실용적 산물인 동시에, 순백의 선형적 미감을 통해 복식의 격조를 완성하는 미적 장치이다. 이러한 정제미는 인위적인 부가 장식 없이도 선과 면의 선명한 대비만으로 조형적 깊이를 더한다. 결과적으로 조형적 정제미로서의 동정의 미학은 현대 패션의 칼라(Collar) 디자인이나 미니멀리즘 룩에 구조적 영감과 정제된 디테일의 전형을 제공하는 한복만의 독보적인 디자인 DNA로 정의된다.
이와 같이 본 장에서 규명한 한·중·일 복식의 조형 층위별 디자인 DNA를 대조 분석하여 요약하면 <Table 2>과 같다. 이는 삼국 복식이 공유하는 보편적 요소 내에서 한복이 견지해 온 배타적 독자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며, 향후 한복의 주체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객관적 준거 틀로 기능할 것이다.

Analysis of the Four Core Design DNAs: Focusing on Structural Modularity and Formative Characteristics
상기 분석 결과에서 확인되듯이, 한복의 디자인 DNA는 타 문화권의 복식이 지향하는 '고정된 형태'나 '장식적 충만함'과는 대조적으로, 가변적 구조와 유기적 선, 그리고 절제된 정제미를 통해 독보적인 미학적 위상을 구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실증적 데이터는 동아시아 복식 문화권 내에서 한국 복식의 고유 지위를 학술적으로 공고히 하는 핵심적 근거가 된다.
Ⅴ. 결론 및 제언
1. 연구의 요약 및 시사점
본 연구는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아시안 룩(Asian Look)’이라는 모호한 범주 아래 혼용되고 있는 한·중·일 전통 복식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타 문화권 복식과 구별되는 한복만의 본질적 디자인 DNA를 규명하고자 수행되었다. 주요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도출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동아시아 복식의 조형적 차별성과 역사적 주체성을 실증하였다. 삼국은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디자인적 공통분모를 공유하나, 각국의 기후 환경과 독자적 미의식에 따라 고유한 진화 경로를 구축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13~14세기 동아시아 복식사의 핵심 담론인 ‘고려양(Goryeoyang)’현상을 통해, 한복의 이분식 구조가 명대 복식 실루엣 형성에 미친 역류(逆流)적 영향력을 고찰하였다. 이는 한복이 일방적인 문화 수혜자가 아닌, 동아시아 디자인의 능동적 원형(Archetype)이었음을 입증하는 학술적 근거가 된다.
둘째, 한복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4대 핵심 디자인 DNA’를 정립하였다. 본 연구는 한복의 본질적 유전자를 1) 구조적 양감과 가변적 실루엣(Structural Volume & Variable Silhouette), 2) 선형적 리듬과 비대칭 곡선미(Linear Rhythm & Asymmetric Curvilinearity), 3) 선(線) 중심의 체결 시스템(Linear Closure System), 4) 조형적 정제미로서의 동정의 미학(Aesthetic Refinement as Represented by the 'Dongjeong')의 네 가지 층위로 정의하였다. 이러한 체계화된 지표는 디자이너의 직관에만 의존하여 발생할 수 있는 정체성 희석을 방지하는 실무 가이드라인인 동시에, 타국 요소와의 비의도적 혼용을 선별하는 학술적 필터(Filter)로 기능할 것이다.
셋째, K-디자인의 본질적 가치 확립을 통한 ‘복식 주권’을 선포하였다. 단순히 소재에 한글 문양을 가미하는 식의 표상적 접근에서 벗어나, 한복의 구조적 원리와 선의 미학을 현대적 기능성에 접목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체성 구현임을 확인하였다. 이는 최근 빈번해지는 타국의 문화 공정 및 복식 왜곡 시도에 대응하는 강력한 학술적 방어 기제이자,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복식의 디자인 주권(Design Sovereignty)을 확립하는 전략적 토대가 될 것이다.
2. 연구의 한계점 및 제언
본 연구는 한복 고유의 조형적 DNA 도출과 삼국 복식 간의 변별적 정체성 규명에 집중하였으나, 다음과 같은 한계점을 바탕으로 향후 연구를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분석 대상의 확장과 젠더리스(Genderless) 관점의 연구이다. 본 연구는 조형적 변별력이 가장 뚜렷한 여성 복식을 중심으로 DNA를 추출하였다. 향후 남성 복식 및 글로벌 K-콘텐츠 속에 나타난 복식의 변용 양상을 추적함으로써, 성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한 K-디자인 문법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 패션 테크놀로지와의 공학적 융합이다. 현대 패션의 핵심축인 가상 복식(Digital Fashion) 환경에서 한복의 평면적 구조와 '소프트 볼륨'을 정교하게 구현하기 위한 드레이핑(Draping) 알고리즘 연구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전통의 원형이 디지털 공간에서도 왜곡 없이 재현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실무적 교육을 위한 '디자인 정체성 매뉴얼'의 체계화이다. 창의적 변형이 상업적 왜곡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본 연구에서 정립한 4대 핵심 디자인 DNA(구조적 양감, 선형적 리듬, 체결 시스템, 조형적 정제미)를 기반으로 한 산업적 가이드라인을 보급해야 한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박사학위 청구논문 중 일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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