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Article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 Vol. 76, No. 2, pp.67-81
ISSN: 1229-6880 (Print) 2287-782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Apr 2026
Received 19 Mar 2026 Revised 07 Apr 2026 Accepted 20 Apr 2026
DOI: https://doi.org/10.7233/jksc.2026.76.2.067

대한제국기 궁내부 본부(宮內府本府) 및 예식원(禮式院) 예복 제도의 대례복 재현을 위한 자수 연구

이경미 ; 이지수
한경국립대학교 교수/한경국립대학교 동아시아문화융복합연구소 소장
한경국립대학교 박사수료
A Study on Embroidery for the Reproduction of Court Dress According to the Regulations of the Gungnaebubonbu(宮內府本府) and Yesigwon(禮式院) in the Daehan Empire
Kyungmee Lee ; Jisoo Lee
Professor, Major of Clothing Industry, Hankyong National University/Director, Cultural Convergence Research Institute for East Asian Studies, Hankyong National University
Doctoral Course, Department of Human Ecology, Hankyong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Kyungmee Lee, e-mail: huku9@hknu.ac.kr

Abstract

This study aims to establish a foundational framework for the reconstruction of ceremonial attire used by officials of the Gungnaebubonbu and Yesigwon during the Deahan Empire. The research specifically focuses on the “Regulations on the Court Dress of the Gungnaebubonbu and Yesigwon” and the “Specifications for the Daeryebok(court dress) and the Soryebok(formal dress) of the Gungnaebubonbu and Yesigwon” both promulgated in February 1906. By integrating institutional analysis, artifact examination, and embroidery experiments, this study aimed to secure critical data for historical restoration. The findings were as follows: First, since its establishment in 1894, the Gungnaebu underwent numerous structural reorganizations, but despite the introduction of Western-style civil official dress codes in 1900, evidence suggests that officials continued to wear a mixture of traditional and Western-style Daeryebok depending on the specific administrative or diplomatic context. Second, the regulations introduced in 1906 appear to have been primarily intended for high-ranking officials, and officials of the Yesigwon who played central roles in diplomatic ceremonies, rather than the entire department. Third, an analysis of the "Park Gi-jun Daeryebok" held at the Seoul Museum of Craft Art, reveals that the Daeryebok took the form of a shawl-collared tailcoat, extensively decorated with intricate goldwork embroidery, for whitch sophisticated techniques, including cutwork, couching, and S-ing, were utilized. Finally, a reproduction experiment of a single plum blossom (Ewha) branch was conducted using materials and processes identical to the original artifact, the success of which confirmed the feasibility of a full-scale reconstruction.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expected to contribute to the visualization of the Daehan Empire attire, providing valuable resources for exhibitions, historical education, and design applications through the tangible restoration of these cultural assets.

Keywords:

court dress, goldwork embroidery, Gungnaebubonbu, Ewha, the Daehan Empire, Yesigwon

키워드:

대례복, 골드워크 자수, 궁내부 본부, 이화, 대한제국, 예식원

Ⅰ. 서론

조선은 1876년 이후 서양 및 서양화된 일본과 조약을 맺은 후 서양 예복(禮服)과 상복(常服)을 제복으로 받아들였다. 가장 먼저 1895년 4월 11일에 군인의 복장 규정이 정비되었고(Gazette Section, Cabinet Records Bureau, 1895a), 대한제국 선포 후인 1899년 6월에 원수부가 설치되면서 황제(대원수)와 황태자(원수)가 양복의 군복을 착용하게 되었다.

문관의 경우는 1894년과 1895년을 거치면서 ‘조신(朝臣) 이하 복장식’을 통해 대례복과 소례복으로 흑단령을 정하였는데(Gazette Section, Cabinet Records Bureau, 1895b) 조복(朝服)과 제복(祭服) 제도는 그대로 유지한 위에 서양 예·상복, 즉 대례복, 소례복, (통)상복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와 같이 전통과 서양 복식제도가 공존하는 현상은 대한제국기까지 지속되었다(Deoksugung Palace Management Office, 2018). 문관 복장에 양복이 도입된 것은 1900년 4월 17일에 칙령 제14호 문관복장규칙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Gazette Section, General Affairs Bureau, 1900). 문관복장규칙 제1조에서 문관은 ‘무관과 경무관을 제외한 문관으로 임명받은 자’로 규정되어 있다(Gazette Section, General Affairs Bureau, 1900). 이때 문관 중에는 조선시대에 없었던 궁내부 소속 관원이 있었다. 궁내부는 갑오개혁기인 1894년에 설치된 부서로, 의정부와 분리되어 왕실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게 된 기관이다. 문관복장규칙이 처음 발표될 때에는 궁내부 소속 관원의 복식제도가 따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1906년 2월 27일이 되면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宮內府本府及禮式院禮服規則)’이 발표됨으로써 이들의 예복이 별도로 규정되었다(Gazette Section, General Affairs Bureau, 1906a). 이에 대해 Lee(2008)는 1906년이 되어 대한제국 문관의 대례복이 2종으로 분화되었다고 정리하였다. 이 연구는 새로운 예복 제도가 성립되기 전까지 궁내부 소속 관원들이 일반 문관들과 같은 관복을 착용한 것으로 추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는 다른 의견으로, Choi(2008b)는 궁내부의 황실업무 담당이라는 특수성과 새롭게 발굴된 『관복장도안[官服章圖案]』 자료를 바탕으로 1906년 이전에도 궁내부 관원들이 일반 문관들과 달리 문양의 차이가 있는 대례복을 착용하였을 가능성을 추정한 바 있다.

본 연구는 1906년 2월에 공표된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과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대례복과 소례복 제식’에 의해 제작된 대례복 유물의 자수 재현을 위해 설계되었다. 한국복식사 분야의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대례복에 대해서 법령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된 Lee의 연구들과(Lee, 2008; Lee, 2019) Choi의 연구들이 있고(Choi, 2008a; Choi, 2008b; Choi, 2011), 유물을 중심으로 정리된 연구가 진행되었다(You et al., 1991). 그러나 아직까지 재현을 위한 실험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유물의 자수는 유럽으로부터 들어온 골드워크 자수(goldwork embroidery)로, 지금까지 문관대례복의 자수 연구는 재현 연구까지 이루어졌지만(Lee, 2015; Lee, 2016),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관원 대례복의 자수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에 본 연구는 먼저, 1906년에 발표된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에서 이 옷의 착용 대상인 ‘궁내부 본부’와 ‘예식원’에 대해 검토하고, 다음으로, 이 규정에 의해 제작된 대례복 유물 한 점을 조사하여 정리한 다음, 마지막으로 이 유물을 재현 제작하기 위한 기초적인 자수 실험을 진행하였다.

본 연구를 위해 선행연구로부터 궁내부 관제 변화를 고찰하였고, 1910(융희4)년에 발간된 『Gungnaebu gyurye (宮內府規例)』에 정리된 궁내부 관원의 복식제도들을 일부 살펴보았으며, 서울공예박물관에 소장된 주임관 박기준 대례복 유물을 조사하여 상의 전면의 이화 가지 문양 하나를 골드워크 기법으로 자수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가 궁 내부 본부와 예식원 대례복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되어 앞으로 박기준 유물을 대체하여 전시될 재현품을 제작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Ⅱ. 궁내부 관제 검토와 복식제도 고찰

1. 궁내부 관제 중 예식원의 신설과 변화

개항 직후 조선의 개화정책은 통리기무아문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되다가 갑오개혁을 시작한 1894년 6월 25일 이후에는 군국기무처에서 개혁을 진행하였다. 군국기무처는 같은 해 11월에 폐지되었는데 이 시기인 1894년 6월 28일에 「궁내부관제(宮內府官制)」를 통해 궁내부(宮內府)가 설치되었다(Suh, 1990). 궁내부의 설치는 봉건 왕실을 국정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 정부는 이 시기 이후 의정부와 궁내부로 이원화되었다. 이후 궁내부 조직은 소속 관청이 여러 차례 설치 및 통합되거나 폐지되는 등의 과정을 겪었다.

궁내부의 산하 조직 중 한 기관인 예식원은 1900년 12월에 처음 설치되었다. 예식원은 일체의 예식, 친서(親書)·국서(國書)의 작성을 담당하는 부속기관이었다. 예식원은 대한제국과 조약을 맺은 국가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외교 의례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소속 직원들의 복장을 양복으로 갖출 필요가 있었다. 예식원은 1905년 11월에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상실된 다음 해인 1906년 8월 23일 ‘포달(布達) 제135호에 의해 폐지되고 장례원 예식과로 축소되었다.1) 예식원 관원에게 대례복 착용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 절에서 설명하겠다.

2. 1906년 전후 궁내부 관원의 복식 검토

앞 절에서 서술된 바와 같이 예식원은 궁내부 산하에 있으면서 외교 의례를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예식원은 1902년 6월에 고종 즉위 40주년 칭경예식을 준비하기 위해 대한제국의 외교의례를 종합 정리한 『Yesik-jangjeong [禮式章程]』을 발간하였다(Kim, 2011). 『Yesik-jangjeong[禮式章程]』은 ‘외빈의 폐현과 환영·환송에 대한 의례[外賓陛見及迎送式]’를 정리한 책이다. 의례 중에서 제일 먼저 정리된 것은 ‘외국사신 폐현급영송식(外國使臣 陛見及迎送式)’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은 황제나 황태자가 외교관을 접견하여 국서를 받을 때의 의례절차를 정리한 것이다. 이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식으로 표현한 각국공사국서봉정도(各國公使國書奉呈圖)를 보면 외국공사가 국서를 봉정할 때 황제와 함께 참여하는 대상은 원수부 총장 2인, 영관(領官) 2인, 어역참리관(御譯參理官, 통역원), 궁내대신, 외부대신, 예식원장, 예식원부장, 예식원관원 2인이고, 그들의 배치도는 다음 <Fig 1>과 같다. <Fig. 1>의 왼쪽은 원전 그대로이고, 오른쪽은 이해하기 쉽게 다시 정리한 것이다.

<Fig. 1>

Original Diagram & Redrown Diagram, Ceremonial Diagram for the Presentation of Credentials by Foreign Envoys [各國公使國書奉呈圖] - Yesik-jangjeong [禮式章程]

이 도식을 통해 서양식 외교의례를 행할 때 예식원 관원 다수가 참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Yesik-jangjeong [禮式章程]』에 이 의례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대례복을 착용하라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예식원 소속 관원들은 궁내부의 다른 기관들에 비해 대례복을 특별히 마련하고 착용하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궁내부는 1894년에 설치되었고, 예식원은 1900년에 부속기관으로 설치되었으며, 『Yesik-jangjeong[禮式章程]』은 1902년에 작성되었다. 1894년의 대례복은 전통식 흑단령이었고, 1900년의 대례복은 서구식 연미복형이었으므로 예식원 관원은 각 시기별로 그에 상응하는 대례복을 착용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특히 1900년의 문관대례복 제정이 이루어진 후 예식원 관원들이 일반 문관들과 같은 형태의 대례복을 착용하거나 전통식 대례복을 착용하였는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각 자료와 문헌 자료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 참석을 위해 1902년 7월에 대한제국이 파견한 특명부영대사(特命赴英大使) 의양군(義陽君) 이재각(李載覺) 일행의 사진과 수행원 정삼품 이종응(李鍾應)의 기행문인 『Seosarok(西槎錄)』을 들 수 있다.2) 이재각 일행은 1902년 4월 6일에 한양을 출발하여 8월 20일에 인천에 도착하기까지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14개국을 거쳤다(Gu, 2016). 이재각, 이종응과 함께 수행원으로 예식원 번역과장 고희경(高羲敬), 참리관 김조현(金祚鉉)도 있었다. 직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고희경과 김조현은 예식원 소속의 관원이었다. 『조선일보』를 통해 이종응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던 당시 촬영된 사진(Fig. 2)도 함께 공개되었다. <Fig. 2>의 앞줄 왼쪽부터 김조현, 이재각, 이종응이 앉아 있고, 뒷줄 왼쪽부터 고희경, 영국영사 허버트 고페(Herbert Goffe, 갈복(葛福))가 서 있는 이 사진은 사절단 일행이 일본 요코하마에서 찍은 사진이다(Park, 1999).

<Fig. 2>

The Daehan Empire Embassy to Great Britain on the Occasion of the Coronation of King Edward VII - park, 1999.

『Seosarok(西槎錄)』에 의하면, 이들은 1902년 4월 7일에 인천에서 배편으로 출발하여 4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한 후 4월 12일 고베를 거쳐 4월 15일 요코하마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미국 상인의 여관 그랜드 호텔에 투숙하였고 4월 22일에 동경 의복점 주인을 만나 대례복 제작을 위해 치수를 쟀다. 이들이 맞춰 입은 대례복은 <Fig. 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코하마에서 18일을 머문 후 5월 2일 영국선 암푸라쉬호에 올라 영국으로 출발하였고, 6월 6일 영국 런던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6월 13일 민영돈 주영공사와 함께 영국 황제를 폐현하여 국서봉정식을 행할 때 예복을 갖추어 입었고 영국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 7월 7일 영국을 떠났다.

<Fig. 2>에서 대사 이재각이 착용한 대례복은 모자로 가려져 있긴 하지만 전근화(全槿花) 6개와 반근화(半槿花) 6개를 수놓은 칙임관 1등 대례복으로 보이는데 이는 1900년에 프랑스 공사였던 이범진의 칙임관 1등 대례복과 같다(Fig. 3). 수행원들은 반근화 4개인 주임관 대례복을 착용하였는데 이는 1901년 영국에 파견된 외교관이었던 이한응의 주임관 대례복과 같다(Fig. 4). 이들이 착용한 대례복은 1900년 4월에 제정된 문관대례복이다.

<Fig. 3>

A photograph of Lee Bum-jin(李範晉) - Korea University Museum, 2006, p.203

<Fig. 4>

A photograph of Lee Han-eung(李漢應) - Son, 1957, p.1

두 번째로, 1902년 11월부터 1903년 5월까지 약 7개월가량 대한제국에 머물렀던 이탈리아 외교관 Rosetti(1904)는 대한제국 황제 접견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L'IMPERAORE E LA SUA CORTE(황제와 그의 조정)’에서 황실의 의전관(Cerimoniere della Corte Imperiale)과 황제의 부관(Aiutante di Campo di S. M.)이라고 설명을 단 사진 <Fig. 5>를 제시하였다. 사진 속 의전관은 예식원 직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는 전통식 대례복인 착수형 단령을 입고 있다. 옆의 부관은 견장의 형태와 소매의 인자(人字)형 수장이 2줄이므로 육군 위관(尉官)급 중 부위(副尉)의 군복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부위가 착용하고 있는 육군의 복장은 1900년 7월 이후에 개정된 두 줄 단추 형식(double breasted)의 정장(正裝)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제티가 고종황제를 접견한 시기에는 육군 정장이 두 줄 단추 형식이 맞고, 서구식 문관대례복도 1900년 4월에 이미 정해져 있었으므로 예식원 직원은 서구식 문관대례복을 착용하여야 하지만 이와같이 전통식 대례복을 착용한 것이다. 이 사진은 촬영자와 촬영시기가 확실하기 때문에 예식원 직원이 계속 전통식 대례복을 착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중요한 자료로 볼 수 있다.

<Fig. 5>

Imperial Master of Ceremonies and Imperial Military Attendant - Rosetti, 1904, p.104

세 번째로, 『官報』에 발표된 규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06년 7월 19일 『官報』 「正誤」에 ‘2월 28일 호외 관보 궁내부본부급예식원예복규칙 제16조 아래에 부칙 제17조 上項各官이 但傳任官 內各院司時에는 仍舊着用할 事 28자를 첨입 개정 부표하고’라는 내용이 공표되었다(Gazette Section, General Affairs Bureau, 1906b). 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면 복식 규정에 부칙으로 제17조를 더하여 ‘상항 각 관이 궁내부 내 각 원(院)과 사(司)로 전보되었을 때 옛 관복을 착용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이 내용은 『Gungnaebu gyurye(宮內府規例)』 ‘궁내부본부와 예식원(장례원 예식과에 해당함) 대례복과 소례복 제식’ 제16조 다음에 덧붙여 정리되어 있다. 이 규정을 통해 궁내부 관원들 중에서도 서구식 대례복을 착용하는 관원과 전통식 대례복을 착용하는 관원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1900년 문관복장규칙이 제정된 이후는 물론 1906년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이 제정된 이후에도 궁내부에서는 서구식 대례복과 전통식 대례복을 혼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궁내부규례』 ‘복제’편을 통해 ‘궁내부 본부’와 ‘궁내부’의 비동일성 추정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 중인 1910년 발간 『Gungnaebu gyurye (宮內府規例)』에는 궁내부 산하 기관의 다양한 예복 제도가 정리되어 있다. 가장 먼저 제시되어 있는 규정은 ‘궁내부본부 및 예식원(장례원 예식과에 해당함) 예복 규칙’과 ‘궁내부본부와 예식원(장례원 예식과에 해당함) 대례복과 소례복 제식’이다. 이 규정은 고종황제 재위 기간인 1906년 2월에 발표된 것이고 그 외에는 순종황제가 즉위한 후인 1908년부터 1910년 사이에 발표된 것들이다. 첫 번째 규정인 궁내부본부와 예식원 예복 규정은 1906년 2월에 규정이 발표될 때까지 예식원이 따로 존재했기 때문에 ‘예식원’으로 정해져 있지만 같은 해 8월에 예식원이 폐지되고 장례원 예식과로 조직 개편이 이루어져 괄호를 이용하여 ‘장례원 예식과에 해당함’이 덧붙여져 있다.

그 다음에 정리되어 있는 1908년 이후 복식 규정에는 ‘어료마차 어자 이하 복제(御料馬車御者以下服制)’(1908년 4월 23일), ‘시종원 승녕부 급 황후궁 내승 복제(侍從院承寧府及皇后宮內丞服制)’(1908년 12월 25일), ‘시종원 승녕부 연감장 연감 급 주전원 승녕부 소정 자탄수 복제(侍從院承寧府庭監長庭監及主殿院承寧府掃丁紫炭手服制)’(1908년 6월 18일 결재, 9월 19일 개정, 1910년 5월 19일 개정), ‘장례원 악사장 이하 복제(掌禮院樂師長以下服制)’(1908년 5월 13일 포달 제176호), ‘동궁 직원 공봉복 규제(東宮職員供奉服規制)’(1908년 4월 20일, 포달 제173호), ‘전선사 선부 선수 예복 복제(典膳司膳部膳手禮服服制)’(1908년 11월 27일), ‘주전원 소속 전무과 공부 급 유부 복제(主殿院所屬電務課工夫及油夫服制)’(1910년 4월 2일), ‘주전원 소속 전정 복제(主殿院所屬殿丁服制)’(1910년 4월 8일, 5월 24일 개정), ‘어원 사무국 순시 복제(御苑事務局巡視服制)’(1909년 8월 25일), ‘수학원 학도 복제(修學院學徒服制)’(1908년 6월 9일)가 수록되어 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면 황제 폐하의 마차를 모는 마부, 황후와 황태자의 사무를 담당하는 관리, 궁중의 청소와 난방 등을 담당하는 관리, 황실 음악을 담당하는 악사장, 동궁 직원, 황실의 식사와 연회의 요리를 담당하는 관리, 궁궐내 전기 시설 등을 다루는 관리, 궁궐의 전각 등을 관리하는 관리, 황실 정원 등을 관리하는 관리, 수학원의 학생들 등의 복장 제도를 정리한 것이다. 이들은 궁내부 산하에 있던 조직에 포함된 관리들로, 이들의 복장 제도는 특히 통감부가 설치된 후 순종황제시기라는 시대적 배경으로부터 일본 제도가 반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들 규정이 어느 정도 실효성을 가지고 시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료를 더 보완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1908년 이후 궁내부 내에 다양한 다른 제복을 착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으로부터 1906년에 예복 제도를 정할 때 전면에 나와 있는 ‘궁내부 본부’가 궁내부 전체를 의미하기보다는 궁내부 내의 중심 부서를 한정적으로 의미하였을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대례복’은 ‘궁내부 본부’와 ‘예식원’의 직원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8월에 예식원이 장례원 예식과로 재편된 이후에는 ‘궁내부 본부’와 ‘장례원 예식과’의 직원을 대상으로 한 규정이었다. ‘궁내부 본부’가 궁내부 전체를 지칭하는지 아니면 궁내부의 특정 부서나 직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일본의 예도 참고할 수 있다. Osakabe (2016)의 책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대한제국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대례복의 형태와 같은 대례복을 ‘궁내고등관’이 착용하였고, 궁내부 내 마부, 동궁직, 악사장, 학습원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제복은 1908년 이후의 대한제국처럼 각각 따로 제정되어 있었다. 이러한 예를 통해 통감부가 설치된 후인 1906년 2월 제정의 대한제국 궁내부본부의 대례복 역시 ‘대신관방’과 같은 궁내부의 주요 부서 또는 궁내부에 소속된 고위 관직자가 착용한 대례복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으므로, 궁내부본부와 궁내부가 같은 의미는 아닌 것으로 추정한다.


Ⅲ.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정 검토

1.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의 내용

1906년에 제정된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의 내용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조에서는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관원의 예복은 대례복과 소례복의 2종으로 정한다고 하였다. 제2조에서는 대례복의 착용일을 정리하였는데 문안시, 동가동여시, 공식 폐현시, 궁중 사연시에 착용하도록 하였다. 제3조에서는 소례복의 착용일을 정한 것으로, 폐현시, 공식연회시에 착용하도록 하였다. 제4조에서는 대례복과 소례복의 구성품을 나열하였는데 대례모, 대례의, 조끼[下衣], 대례고(大禮袴), 검, 검대, 백포하금, 백색 장갑[白色手套]으로, 소례복은 대례모, 소례의, 조끼[下衣], 고(袴), 대례봉(大禮奉), 봉대(奉帶), 백포하금, 백색 장갑으로 구성되었다. 특기할 사항은 소례복에 대례모를 쓰고, 대례봉을 패용한 것이다.

2.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대례복 제식 중 대례의(大禮衣)에 대한 내용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의 대례복 제식 중 대례의에 대한 규정은 제1조부터 5조까지로, 다음과 같다. 제1조는 형태에 대한 규정이다. 대례복을 착용하는 대상인 친임관,3) 칙임관, 주임관의 상의는 심흑감색의 나사(羅紗)로 만들고, 전면에 세운 깃이 흉부에서 합해지며 허리 사이에서 점차 열려 사선으로 흘러 옷자락에 이르는 형태이다. 옷깃으로부터 옷자락에 가로로 이화문을 금수하였고, 가장자리는 가로무늬의 금선을 자수하는데 친임관과 칙임관은 너비가 5분, 주임관은 4분으로 하였다.4) 제2조는 대례의 전면 표장에 대한 내용으로, 앞길 전면에 전개(全開), 반개(半開) 미개(未開)의 꽃송이가 달린 이화 가지를 수놓는데 친임관은 11개, 칙임관은 9개, 주임관은 7개였다.5) 양쪽 포켓은 천청색 옷감으로 포켓 뚜껑을 붙이고 그 위에 전개이화 3개를 수놓았다. 앞길 전면 좌우 중심에 금제로 만든 이화문 단추를 7개씩 달고, 이상의 표장은 모두 금사로 수놓았다. 제3조는 대례의 후면 표장으로 허리 아래를 나누고 좌우 양쪽 단에 가로 무늬의 금선을 두르고, 뒷자락의 양쪽 가장자리에 금제로 만든 이화문 단추를 1개씩 부착하는데 지름은 7분이다. 친임관, 칙임관 주임관 모두 칼라의 뒷중심 아랫부분[脊部]에 아래로 향한 품자(品字)형의 전개 이화 3개 가지와 허리부분에 위로 향한 품자(品字)형 전개 이화 가지 3개를 금수하였다.6) 제4조는 수장(袖章)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천청색 나사 재질 위에 친칙주임관 모두 좌우 반면에 품자형 전개 이화 가지 3개씩을 금수하였다.7) 제5조는 영장(領章)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역시 천청색 나사 재질에 횡문 금선 2조를 붙이고 그 안에 친칙주임관 모두 전개이화 1개를 중심으로 좌우에 꽃가지로 금수하였다.8)


Ⅳ.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대례복의 유물 현황과 자수 특징

1. 박기준의 생애

서울공예박물관 소장 대례복 유물의 착용자 박기준(朴基駿)의 생몰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官報』에 산재되어 있는 기록을 통해 일본어 번역관으로 재직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An & Yu(2019)의 자료를 참고하여 박기준의 관직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박기준의 관직 변화
1897. 03. 09 任 외부번역관보(판임관 6등)
1899. 03. 24 任 주차일본공사관 서기생(판임관 4등)
1900. 12. 20 6품 任 예식원주사(판임관 4등)
1901. 09. 22 예식원주사 任 예식원 번역관 (주임관 6등)
1903. 02. 11 예식원번 역관 命 奏箚 일본국공사 隨員
1905. 03. 11 정3품 任 예식원 예식관(주임관 5등)
1906. 07. 31 任 시종원 시종(주임관 4등)
1907. 09. 03 시종원 시종 任 중추원 부찬의 (주임관 4등)
1908. 07. 13 任 法部 비서관(주임관 3등)

박기준은 1897년 판임관 6등에 해당하는 외부번역관보를 시작으로 1900년에는 판임관 4급인 예식원주사에 임명되어 1901년까지 지속하였다. 이 시기인 1900년 4월에 문관대례복이 제정되었지만 판임관이므로 문관대례복을 착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1901년 9월에 주임관 6등에 해당하는 예식원 번역관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일본국 공사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1905년 3월에는 주임관 5등 예식원 예식관이 되었고, 1906년 7월에 주임관 4등 시종원 시종이 되었다. 1908년 7월에 법부로 이동하기 전까지 박기준은 계속 시종원 시종직을 수행하였다. 1906년에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관원을 대상으로 한 대례복 규정이 정해졌기 때문에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례복 유물은 박기준이 1906년 2월 이후에 주임관인 예식원 예식관과 시종원 시종의 직책으로 착용한 것이다.

2. 박기준 대례복 유물의 현황

본 유물은 한국자수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현재는 서울공예박물관으로 이관되어 소장중이다. 유물의 구성품은 대례모, 대례의, 하의(조끼), 대례고, 검과 검서, 검대이고, 이와 함께 태극장, 순종황제 즉위 기념장, 순종황제 남서순행 기념장이 포함되어 있다.

박기준 대례의(Fig. 6)에 대한 조사는 2024년 4월 22일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진행되었다. 유물 상의는 원버튼에 뒤트임이 있는 테일코트이고, 겉감 중 몸판은 심흑감색 모직이며, 칼라, 포켓, 수장은 천청색 모직이다. 안감은 몸판은 검은색, 소매는 베이지색 옷감이다. 전체적으로 자수를 먼저 놓은 다음에 봉제를 진행하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몸판 가장자리와 칼라와 몸판 사이에 있는 자수선은(Fig. 7) 제작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수를 먼저 놓은 다음 몸판끼리 연결하면서 다시 자수를 놓는 과정으로 완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매는 2장 소매이고 수장(袖章)은 턴백 커프스 형태로 제작하였다. 주머니는 자수를 먼저 놓은 다음 주머니를 만들고 완성한 주머니를 몸판에 끼워서 박았다. 단추 없이 4개의 훅앤아이를 달아 앞을 여미도록 하였다.

<Fig. 6>

Bak Gi-jun’s Daeryebok - Kyungwoon museum, 2012, p.112

<Fig. 7>

Embroidery on the Collar and Edges of Bak Gi-jun’s Daeryebok - Kyungwoon museum, 2012, p.99

3. 박기준 유물의 자수 특징

1) 대례의 자수 분석

박기준 대례복 상의 유물에는 앞길 좌우에 전개, 반개, 미개의 이화 가지가 7쌍 수놓아져 있고 뒷길 등판과 허리에 전개이화 가지가 수놓아져 있다. 이화 가지 문양의 형태를 부위별로 상세하게 나누면 <Table. 1>과 같다. 전개이화, 반개이화, 나뭇잎, 줄기, 미개이화(꽃봉오리), 가장자리의 여섯 부위로 나눌 수 있다. 자수의 기법과 사용된 재료를 부위별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Detail of the embroidery on the Daeryebok jacket worn by Bak Gi-jun

첫째, 전개이화 및 반개이화는 바닥면에서 볼록하게 입체감이 있도록 먼저 밑수[padding] 처리를 해야 한다. 밑수 재질은 유물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펠트(felt)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Fig. 8). 다음으로 꽃잎은 코일 형태의 러프 펄(rough purl)로 전체 면적을 채우고 가장자리는 펄 펄(pearl purl)로 장식하였다. 꽃술은 브라이트 체크 펄(bright check purl)로 표현하고 그 끝에 3mm 스팽글(spangle)로 장식하였다. 이화의 중앙에는 5mm, 4mm, 3mm의 스팽글을 포개어 가운데 꽃중심을 표현하였다.

<Fig. 8>

felt padding, Ewha(photograph by author, 2024)

둘째, 나뭇잎도 금사로 수를 놓기 전 밑수 처리를 해야 하는데 밑수 재질은 어떤 것을 사용하였는지 유물에서 확인이 어려웠다. 밑수를 놓은 후 나뭇잎 전체를 러프 펄로 채웠다. 나뭇잎 중앙의 주맥은 잎끝으로 갈수록 4mm, 3mm, 2mm의 작은 스팽글을 크기별로 배치하고 스팽글 중앙에는 S-ing 골드워크 기법으로 러프를 이용하여 수놓았다.

셋째, 줄기의 밑수 재질은 어떤 것을 사용하였는지 유물에서 확인이 어렵지만 줄기의 형태가 유연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므로 여러 가닥의 끈[string]을 모아 밑수를 놓았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 위를 금사 러프 펄 4줄, 체크 펄 2줄을 번갈아서 자수하여 면을 채웠다.

넷째, 줄기 끝에 있는 미개이화(꽃봉오리)도 어떤 밑수 재질을 사용하였는지 유물에서 확인이 어려우나 형태로 미루어 보아 형태를 잘라서 붙이기 쉬운 펠트를 사용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위를 금사로 채우는데 꽃대는 스무드 펄로, 꽃잎은 브라이트 체크 펄로 채웠다. 또한 4mm 스팽글로 밑씨를 표현하고 러프 펄로 꽃받침과 꽃잎의 경계를 표현하였다.

마지막으로 옷의 가장자리에 금사 자수선을 둘렀는데 너비가 넓은 중앙선의 밑수 재질은 유물에서 발견하기 어려웠고 좌우 얇은 선의 밑수는 <Fig. 9>와 같이 끈으로 밑수를 놓았다. 금사는 중앙에는 러프 펄 4줄, 체크 펄 2줄을 반복하여 면을 채우고, 양쪽 얇은 선은 러프 펄을 이용하여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측의 경우 좌상향(\)과 우상향(/)의 사선 방향으로 러프 펄로 수를 놓았다.

<Fig. 9>

string padding, jacket edge(photograph by author, 2024)


Ⅴ. 박기준 대례복 유물의 자수 재현 실험

본 장은 박기준 대례복 유물을 재현하기 위한 자수 기법 부분의 기초 실험 단계를 정리한 것이다. 유물조사 결과 앞길과 뒷길, 커프스, 포켓에 새겨진 자수의 문양 형태와 기법이 유사하였다. 이에 전체 자수를 재현하기보다 자수 문양 중 한부분을 선택하여 재현 실험을 실시하였다. 재현 실험 대상은 유물의 앞길에 수놓아진 자수 중 좌측 하단에서 2번째 이화 가지 문양이다(Fig. 10). 자수 재현 실험은 도안 제작 - 수틀매기 - 도안 옮기기 - 밑수 놓기- 금사 자수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자수 도안은 유물 실물 조사를 통해 사이즈를 실측하여 제작하였다(Fig. 11). 밑수의 재질은 앞서 본 것과 같이 유물에서 이화와 가장자리 자수의 얇은 선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부위는 유물의 자수 형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재료로 선택하여 실험을 진행하였다. 실험 과정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Fig. 10>

area to be reproduced(Kyungwoon museum, 2012, p.99.)

<Fig. 11>

embroidery pattern(pattern created by the author)

1. 밑수[padding] 과정

수틀에 맨 후 가장 처음 하는 작업인 밑수는 자수의 입체감을 만드는 과정으로 펠트, 끈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작업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면적의 너비가 일정하지 않은 꽃봉오리, 꽃잎 등은 모양을 다듬기 쉬운 펠트로, 너비가 비교적 일정한 나무줄기, 가장자리 선은 끈을 이용하여 밑수 작업을 진행하였다.

유물에서의 자수 입체감이 바닥면에서 약 3mm 이므로 두꺼운 펠트를 사용하였고 모양대로 자른 펠트는 2mm 간격으로 실로 고정하였다. 면적이 작은 나뭇잎과 꽃봉오리는 펠트 1겹으로, 면적이 큰 꽃잎은 2겹(Fig. 12)으로 입체감을 주었다. 줄기의 경우 약 1mm 두께의 끈 5~6줄을 겹친 후 5mm 간격으로 고정하였다. 가장자리 선은 줄기 밑수 재료와 동일한 끈으로 얇은 곳은 1줄, 두꺼운 곳은 6줄을 사용하였다.

<Fig. 12>

double-layer padding process(photograph by author)

완성된 밑수의 모습은 <Fig. 13>과 같다.

<Fig. 13>

finished padding(photograph by author)

2. 금사 자수 과정

1) 줄기

줄기를 수놓는 금사 재료는 러프 펄과 브라이트 체크 펄을 사용하였다. 코일 형태의 실이기 때문에 너비에 맞게 실을 자른 다음 다른 실을 코일 중앙에 통과시켜 옷감에 고정하였다. 줄기의 중앙부터 자수를 시작하여 줄기의 곡선을 따라 기울기를 조절하며 수를 놓았다. 러프 펄 4줄, 브라이트 체크 펄 2줄을 반복하여 수놓았다(Fig. 14).

<Fig. 14>

tree stem(photograph by author)

2) 나뭇잎

나뭇잎은 러프 펄을 사용하여 잎맥을 중심으로 V자 형태가 되도록 면적을 채웠다. 면적을 모두 채우고 난 뒤, 중앙 잎맥은 4mm, 3mm 스팽글과 러프 펄을 사용하여 에스잉(S-ing) 기법으로 수를 놓았다. 수를 놓고 나면 잎맥에 S 모양이 연속적으로 나타난다(Fig. 15).

<Fig. 15>

leaf embroidery process(photograph by author)

3) 미개이화(꽃봉오리)

꽃봉오리는 꽃잎, 꽃받침, 밑씨로 구성된다. 꽃잎은 브라이트 체크 펄로, 꽃받침은 스무드 펄로 면적을 채웠다. 그다음 러프 펄로 꽃잎과 꽃받침 사이의 경계선을 만들고 중앙에 4mm 스팽글로 밑씨를 표현하였다(Fig. 16).

<Fig. 16>

flower bud embroidery process(photograph by author)

4) 전개 및 반개이화

이화는 꽃잎, 꽃술로 구성된다. 가장 먼저 꽃잎을 수놓는데 러프 펄을 사용하였다. 꽃잎 5장의 면적을 모두 수놓고 난 후, 펄 펄(Pearl purl)로 꽃잎을 두른다. 다음으로 꽃술은 이화 꽃잎 1장당 5개의 꽃술을 배치하는데 브라이트 체크 펄로 꽃술을 만든 다음 그 끝에 3mm의 스팽글을 고정하였다. 스팽글을 고정하는 실은 브라이트 체크 펄을 사용하였다. 그다음 꽃 중앙에 4mm, 3mm, 2mm 순서로 스팽글을 실에 끼우고 브라이트 체크 펄로 스팽글을 고정하였다(Fig. 17, Fig. 18). 반개이화도 동일하게 작업하였다.

<Fig. 17>

Ewha embroidery process(photograph by author)

<Fig. 18>

finished Ewha(photograph by author)

5) 가장자리 선

옷 단인 가장자리 자수는 중앙 넓은 부위와 좌우 얇은 부위, 즉 3구역으로 나뉜다. 먼저 중앙 넓은 부위부터 러프 펄과 브라이트 체크 펄을 사용하여 면적을 채우는데 줄기처럼 러프 펄 4줄, 브라이트 체크 펄 2줄을 반복하여 수를 놓는다. 다음으로 양쪽 얇은 부위는 러프 펄로 왼쪽은 \, 오른쪽은 /방향으로 수를 놓았다(Fig. 19). 최종 결과물은 <Fig. 20>과 같다.9)

<Fig. 19>

finished jacket edge(photograph by author)

<Fig. 20>

comparison of the artifact(left) and the reproduction(right)(photograph by author)


Ⅵ. 결론

본 연구는 1906년 2월에 제정된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의 대례복을 재현하기 위해 자수 실험을 수행한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먼저 대례복의 착용 대상인 ‘궁내부 본부’와 ‘예식원’에 대해 고찰하였고, 서울공예박물관 소장의 예식원 관원 박기준 대례복 유물을 조사하여 정리하였으며, 이를 분석하여 전면 자수의 기본 단위인 이화 가지 하나의 자수를 재현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궁내부는 1894년에 설치되어 왕실 사무를 담당하는 부서로서의 기능을 하였고, 산하 기관의 변화가 여러 번 있었다. 특히 예식원은 1900년에 설치되었다가 1906년에는 장례원 예식과로 개편되었다. 궁내부 관원의 복제는 1894년에는 전통식 대례복 제도를 따르다가 1900년 이후 새로 도입된 문관복장규칙의 서구식 형태를 따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궁내부 전체 부서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1902년에 발간된 『Yesik-jangjeong[禮式章程]』에 따라 중요한 외교의례에 참례하는 관원을 중심으로 서구식 대례복을 착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1902년에 영국으로 파견된 사절단의 대례복 제작 및 착용, 1904년에 저술된 이탈리아 외교관 로제티의 황제 접견 등의 자료를 통해 궁내부 산하의 예식원 관원도 1900년 이후에 서구식 대례복을 착용하지 않은 사례를 확인할 수 있어 전통식과 서구식 대례복을 섞어서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1906년 2월에 제정된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에서 궁내부 본부는 궁내부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궁내부 내에서 대신관방과 같은 주요 부서나 주요 관직자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보이고, 예식원은 8월에 장례원 예식과로 개편되기도 하였지만, 외교 의례에 참가하는 관원들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 제정한 대례복을 착용해야 하는 주요 부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박기준 대례복은 박기준이 1905년부터 1907년 사이에 예식원 번역관과 시종원 시종의 직책을 수행할 때 주임관으로서 착용한 것이다. 유물의 형태는 숄칼라가 달린 테일코트로, 심흑감색 모직 바탕에 칼라, 포켓, 수장은 천청색 모직을 사용하였다. 자수를 분석한 결과 골드워크 기법으로 코일 형태의 금속사를 사용하였고 러프 펄, 스무드 펄, 브라이트 체크 펄, 펄 펄과 함께 3종류 이상의 스팽글을 사용하였다. 자수 기법은 커트 워크(cutwork), 카우칭[couching, 징금수], 에스잉(S-ing) 기법을 활용하여 제작한 것이었다.

넷째, 자수 재현을 위해 유물 상의의 좌측 하단부터 2번째 이화 가지 문양을 선택하여 도안을 작성하였고 수틀을 매고 도안을 옮긴 다음 밑수, 금사 자수 순서로 진행하였다. 밑수의 재료는 면적이 넓고 모양이 불규칙한 꽃과 나뭇잎은 펠트, 줄기와 가장자리 선은 끈을 사용하였다. 금사 자수는 유물에서 사용된 재료와 유사한 러프 펄, 스무드 펄, 브라이트 체크 펄, 펄 펄, 스팽글을 사용하여 유물과 최대한 유사하도록 자수를 진행하였다.

본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후속 연구에서는 도안을 보다 정밀하게 수정하고, 유물의 재료와 더 비슷한 재료를 활용하여 유물 자수에 더 가깝게 재현하고자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대례복의 상의 패턴을 개발하여 전체 자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대한제국 대례복에 대한 연구가 이론적 체계로부터 시각화된 결과물을 도출하는데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되고, 나아가 전시, 교육, 디자인 등의 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Acknowledgments

본 연구는 한경국립대학교 2024년도 학술연구조성비의 지원에 의한 것임

Notes

2) 1999년 4월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을 기해 여왕의 증조부인 에드워드 7세 대관식에 참석한 대한제국 특사의 자료가 『조선일보』에 소개되었고, 이 자료를 참고하였다.
3) 친임관 제도는 을사조약 이후 생긴 것으로, 주로 내각의 대신들과 같이 최고위급의 직위에 해당하였다.
4) 第一條 親勅奏任官의上衣地質은深黑紺羅紗니前面은 豎襟이胸部에合고腰間에셔漸開야斜流야裾에 至고自襟至裾間에半面에橫李花貌樣으로金으로繡 고邊線은橫絞金線이니親勅任官은廣이五分으로 고奏任官은廣이四分으로할事
5) 第二條 上衣前面表章은左右乳部上下에親任官은半開 全開李花各一個及未開李花三個로成李花莖十一枝 오勅任官은九枝오奏任官은七枝오腰部兩側에天靑色地質로囊各一個를付고此에全開李花三個을繡 며前面左右에金製李花鈕釦七介式으로며以上表章 은竝히金絲로繡成事
6) 第三條 上衣後面表章은腰下를割左右兩端에橫紋金線을回繞고後裾分割處兩邊에金製李花鈕釦一個式를付着되圓經이七分이오親勅奏任官勿論고脊部에下向品字形으로全開李花三枝와腰部에上向品字形全開李花三枝를金繡할事
7) 第四條 上衣袖章은地質은天靑色羅紗오袖口로부터三寸을距야後部에縫合고其內左右半面品字形全開李花三枝式을金繡되親勅奏任官이同할事
8) 第五條 上衣領章은天靑色羅紗오橫紋金線二條를付고其內에全開李花一枝오左右에花莖으로金繡되親勅奏任官이同할事
9) 본 결과물은 연구용 샘플로, 박기준 유물의 소장처인 서울공예박물관의 2026년 특별전 ‘더 하이브리드’(2026. 4. 28~2026. 7.26)에서 전시되고 있고, 이후 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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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

<Fig. 1>
Original Diagram & Redrown Diagram, Ceremonial Diagram for the Presentation of Credentials by Foreign Envoys [各國公使國書奉呈圖] - Yesik-jangjeong [禮式章程]

<Fig. 2>

<Fig. 2>
The Daehan Empire Embassy to Great Britain on the Occasion of the Coronation of King Edward VII - park, 1999.

<Fig. 3>

<Fig. 3>
A photograph of Lee Bum-jin(李範晉) - Korea University Museum, 2006, p.203

<Fig. 4>

<Fig. 4>
A photograph of Lee Han-eung(李漢應) - Son, 1957, p.1

<Fig. 5>

<Fig. 5>
Imperial Master of Ceremonies and Imperial Military Attendant - Rosetti, 1904, p.104

<Fig. 6>

<Fig. 6>
Bak Gi-jun’s Daeryebok - Kyungwoon museum, 2012, p.112

<Fig. 7>

<Fig. 7>
Embroidery on the Collar and Edges of Bak Gi-jun’s Daeryebok - Kyungwoon museum, 2012, p.99

<Fig. 8>

<Fig. 8>
felt padding, Ewha(photograph by author, 2024)

<Fig. 9>

<Fig. 9>
string padding, jacket edge(photograph by author, 2024)

<Fig. 10>

<Fig. 10>
area to be reproduced(Kyungwoon museum, 2012, p.99.)

<Fig. 11>

<Fig. 11>
embroidery pattern(pattern created by the author)

<Fig. 12>

<Fig. 12>
double-layer padding process(photograph by author)

<Fig. 13>

<Fig. 13>
finished padding(photograph by author)

<Fig. 14>

<Fig. 14>
tree stem(photograph by author)

<Fig. 15>

<Fig. 15>
leaf embroidery process(photograph by author)

<Fig. 16>

<Fig. 16>
flower bud embroidery process(photograph by author)

<Fig. 17>

<Fig. 17>
Ewha embroidery process(photograph by author)

<Fig. 18>

<Fig. 18>
finished Ewha(photograph by author)

<Fig. 19>

<Fig. 19>
finished jacket edge(photograph by author)

<Fig. 20>

<Fig. 20>
comparison of the artifact(left) and the reproduction(right)(photograph by author)

<Table 1>

Detail of the embroidery on the Daeryebok jacket worn by Bak Gi-jun

Ewha[李花] half-open
Ewha
leaves tree stem flower bud jacket edge
(Kyungwoon museum, 2012, p.101)